사진; 박종식 KOTRA 정보시스템운영팀장은 지난 1년여간 전력을 다해 준비한 CRM 시스템을 국내 공기업 사상 최초로 가동시킨 주인공이다.
#1. 지난달 20일 저녁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호텔. KOTRA 고객사은의 밤 행사가 한창인 크리스탈볼룸에 마련된 연회 테이블 사이를 돌며 참석자들에게 뭔가를 묻고 열심히 경청하는 이가 있다. 박종식 KOTRA 정보시스템운영팀장(51)이다.
대외행사와는 별다른 업무연관이 없을 듯한 전산직 간부직원이 연회장엔 무슨 일일까. 개통을 눈앞에 둔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CRM 서비스를 받으시려면 주민등록번호나 카드번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불편하진 않겠습니까.”
그날 밤 박 팀장의 현장실사는 이렇게 계속됐다.
#2. 작년 성탄절. 모처럼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그는 9명의 팀원과 사무실 불을 밝혔다. 대통령 선거일에도 사무실 PC앞을 지킨 전형적인 워커홀릭. 성탄절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미혼자를 제외한 전 팀원의 정상근무라는 협박성(?) 지시에 생각보다 많이 직원 나와 있더라구요(웃음).”
그의 양손에 들려있던 귤상자와 집에서 아내가 챙겨준 음식에는 팀원들에 대한 미안함이 배어있다.
박 팀장, 그가 이토록 전력을 다해 1년여간 준비해온 KOTRA의 CRM 시스템이 드디어 16일부터 본격적인 개통에 들어간다. KOTRA가 국내 공기업 사상 최초의 도입하는 CRM은 그에게 있어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지난 77년 KOTRA의 전신인 대한무역진흥공사에 전산직으로 입사, 지금까지 한눈 한번 팔지 않고 IT분야에만 몸담아 왔다. 입사동기들이 기획부장, 해외지역본부장 등으로 국내외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도 해외근무 한번 못해본 그는 묵묵히 컴퓨터앞에 앉아있었다.
통상직이 대접받는 조직문화속에서 박 팀장은 늘 ‘열외자’였다. 하지만 박 팀장은 그럴수록 KOTRA 정보화에 매진했다. ‘언젠가는 KOTRA를 내손으로 개혁시켜 놓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결국 그는 공기업 특유의 경직된 KOTRA 조직문화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변화의 조짐은 이미 그가 지난 2001년 설계·구축한 고객관리시스템을 통해 감지되고 있었다.
재작년 KOTRA가 110여개의 해외무역관을 98개로 축소할 때 이 시스템이 제공한 각 무역관의 고객수, 사업건수 등이 주요 판단근거 자료로 활용됐음은 물론이다.
“이제 CRM이 구축되면 KOTRA는 다시 한번 환골탈태하게 됩니다. CRM은 KOTRA의 모든 대고객 사업에 대한 사후관리를 의무화합니다. 직원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을 만한 일은 아니죠. 그래서 사후관리 여부에 직원평가점수를 부여, 성과급 등에서 차이가 날 수 있게 제도화했습니다.”
40년 KOTRA 역사 동안 그 어떤 사장도 바꿔놓지 못했던 대고객 마인드를 박 팀장 그만의 방식으로 변혁시키고 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