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기업네트워크사업’ ‘생산정보화사업’ ‘3만개 중소기업 IT화사업’ ‘e컨설팅을 위한 정보화 혁신 컨소시엄사업’ ‘조합정보화기반구축사업’….
정부가 IT산업 및 기초기반산업의 육성, 전통산업의 IT화, 그리고 중소기업의 정보화를 위해 이처럼 다양한 지원사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이들 사업은 우리나라처럼 자원의 한정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통한 효율적인 정책을 펴야 하는 상황에서 필수적일 뿐 아니라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현 정부의 정보화정책도 전문가와 정책자금 수요자들의 비판을 피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금운영의 효율성과 자금의 수요자 친화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 회사 사업과 관련있는 정책자금의 종류가 이렇게 많다니. 지금부터라도 정부의 각종 정책자금을 타서 사업을 좀 더 확대해 나가야겠습니다.” “그런데 자금을 타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요.” “근데 막상 사용해 보니까 큰 도움은 안되는 것 같아요.”
기업체 사장들이 정부 정책자금과 관련해 쏟아내는 이같은 말들은 정책성과에 가려진 어두운 면을 잘 보여준다.
사실 적지 않은 기업들이 정부의 정책자금에 쉽게 접근하지 못한 채 막연히 나도 ‘정부부조’ 좀 받아봤으면 하는 농담 아닌 농담을 심심치 않게 한다. 이를 반영하듯 정부의 정책자금을 안내하는 사설 기업까지 등장해 성업중이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편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편중의 배경을 부처간 업무중복에서 우선 찾는다. 각 정부부처가 비슷비슷한 IT·정보화사업을 동시에 전개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원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내용들은 조금씩 다르다. 부처별로 공무원들이 자신이 맡고 있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까 일부에서 중복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사실 조직을 바꿔도 또다시 일부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이기도 하다.
한국생산성본부 이희범 회장은 “중복논란이 각종 정책자금에서 일고 있지만 사실 이는 일부일 뿐 이러한 논란이 필요한 투자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며 “일선 업계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서 정책추진의 최초 목적을 끝까지 견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책자금의 좀더 나은 운영을 위해 정부가 놓쳐서는 안될 것이 바로 효율성과 수요자 친화성이다. 이 문제는 일단 수요자 입장에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들은 대부분 정책자금의 확대를 원한다. 모든 산업별 단체가 내놓는 설문조사를 보면 공통적으로 기업들이 자신이 포함된 분야의 정책자금 확대를 최우선 건의사항으로 꼽는다. 그러면서 불만도 제기한다.
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 문병길 사무국장은 “지난 98년 이후 정책자금의 규모가 늘어나고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지원에 나서면서 정책자금 지원제도가 너무 복잡해졌다”며 “이같은 상황은 수요자의 혼란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수요자 친화성을 좀먹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중소기업과 관련된 정책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곳은 모두 12개 부처에 이르고 세부 자금의 수도 100여개에 달한다. 부처별 지원체제는 부처간 선의의 정책경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쟁이 지나쳐 정책 목적의 일관성을 훼손하거나 지원 우선순위의 충실한 반영과 지원 형평성보다는 부처마다 특정 분야에 유사한 지원사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등 부정적 측면도 있다. 또 지원사업을 서로 모방하고 이를 다시 지방자치단체들이 베끼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선순위가 낮은 분야의 지원조건이 더 높아야 할 분야보다 오히려 좋거나 지원목적과 자금용도가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운용부처에 따라 조건이 제각각인 경우도 있다. 이는 중소기업으로 하여금 정책목적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거나 불필요한 민원의 소지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편중·중복지원으로 한번 정책자금을 받은 업체가 계속 자금을 타가는 문제도 수요자 친화성을 훼손한다. 실제로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경우 두 차례 이상 지원받은 업체가 전체의 70%에 육박하는 것으로 지난해 산업연구원 연구자료에 나타나 있다.
산자부 무역위원회에 따르면 정부의 정책자금을 지원받아 개발된 신기술 제품의 70% 이상이 외국에서 수입되는 제품과 똑같거나 비슷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역위원회는 이같은 문제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자금지원이 단순한 소액 배분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즉 선심성 수혜자 확대보다는 기술력이 뛰어난 유망 기업에 집중 투입하는 쪽으로 정책자금의 집행이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기업이 바라는 지원수요를 제대로 충족시키기 위해 지원체계의 내실화와 집행 효율성을 높이는 다양한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 부처별 운용체계의 틀을 벗어나 통합 운용체계를 갖추고 운용 효율화를 추진하는 한편 지원업체를 선별하는 심사 추전기능도 통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조환익 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은 “과거 정부의 정책자금은 완전히 공급자 위주였으나 이것들이 점차 수요자 중심으로 바람직한 전환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중복 지원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의 해결방안은 일단 산관학 공동으로 산업별 로드맵을 만들고 여기에 수요자의 편의를 반영함으로써 정책목적의 수행과 기업의 효율적인 자금활용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도움말 주신분>
생산성본부 이희범 회장, 산업기술재단 조환익 사무총장, 중소기업정보화경영원 백낙기 원장, 산업자원부 전자거래지원과 김준동 과장, 서병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장, 정영수 한국게임산업개발원장, 기획예산처 행정기금과 김윤석 과장,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연구기획부 이명기 부장, 벤처캐피탈협회 이부호 이사, 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 문병길 사무국장
사진설명: 정책자금지원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국가산업 로드맵을 바탕으로 자금집행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수요자의 접근성과 활용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