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는 않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2003년 네트워크장비업계의 각오는 남다르다.
지난 2000년 사상 최고의 호황을 이룬 지 1년 만에 끝없는 추락을 경험한 후 아직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는 네트워크업계는 올해를 다시 비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날개를 추스리고 있다.
◇희망의 불씨를 살린 2002년=2002년은 월드컵 4강 열풍으로 기억되는 해지만 네트워크업계에는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되살린 해로 남아 있다.
시장조사기관 한국IDC에 따르면 지난 2000년 호황기를 누린 국내 네트워크장비시장은 불과 1년 만인 2001년 전년 대비 42%라는 기록적인 감소율을 보였다. 경기침체와 함께 통신사업자·대기업의 네트워크 투자 축소가 맞물리면서 일본시장 진출을 성사시킨 코어세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업체가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다.
이런 하락세는 지난해에도 계속됐다. 2001년 상반기 국내 시장 규모는 최악의 해로 기록된 2001년 동기간에 비해서도 20% 감소하면서 끝없는 추락세가 이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VDSL 및 메트로이더넷 스위치 분야에서 통신사업자들의 활발한 투자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반전되기 시작했다. 특히 KT가 차세대 초고속인터넷서비스시장 선점을 위해 VDSL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을 비롯해 주요 통신사업자가 PC방과 사이버아파트를 위한 메트로이더넷망 확충에 나서면서 시장은 활기를 띠었다.
이에 따라 2002년 하반기에는 시장규모가 2001년 동기 대비 0.9%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2003년 시장에 대한 기대를 높여줬다.
◇불씨를 지펴나가는 2003년=비록 지난해 하반기 시장규모는 증가했지만 2002년 전체 시장규모는 여전히 전년에 비해 9.8%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네트워크장비업계는 막연하게 2003년 시장에 대해 장밋빛 희망을 품기보다 치밀한 사업전략 수립을 통해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전세계 경기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통신시장에 대한 전망도 그리 밝지만은 않지만 지난해부터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수요에 주목하고 있다.
국산 장비업체들은 VDSL과 무선랜에 기대를 걸고 있다. 특히 VDSL의 경우 KT와 하나로통신 등 주요 통신사업자간 불붙은 가입자 확보 경쟁으로 인해 수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만큼 텔슨정보통신·미리넷·다산네트웍스·코어세스·기가링크·기산텔레콤 등 대표적인 국내 벤처업체가 사업 준비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무선랜 분야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10만 가입자 확보에 그친 KT가 올해 110만명의 가입자 유치를 위해 대대적인 무선랜 설비 확충에 나설 것으로 보여 공중망 무선랜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삼성전기·엠엠씨테크놀로지·아크로웨이브 등이 세몰이에 나서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한국루슨트테크놀로지스·한국알카텔·노텔네트웍스코리아 등 외산장비업체도 시장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 외산업체는 그동안 우위를 보여온 광전송장비·대형 메트로이더넷 스위치·백본급 라우터사업에 힘을 실으며 ‘코리안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산업체 경쟁 치열
‘국산 네트워크장비 벤처업계의 지존을 가리자.’
지난 90년대 후반 이후 다산네트웍스·코어세스·한아시스템·기가링크 등 1세대 네트워크장비 벤처업체가 주도해오던 국산 장비업계에 최근 한층 높아진 기술력으로 무장한 새로운 벤처기업들이 활약하면서 신구 벤처업계간 ‘넘버원’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다산네트웍스를 제외하고는 1세대 벤처업체들이 주춤하면서 텔슨정보통신·로커스네트웍스·파이오링크 등이 신흥 강호로 떠오르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전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지난해 좋은 성적을 거둔 다산네트웍스가 유리하다. 이 회사는 지난해 500억원대의 매출을 달성하며 사상 최고의 실적을 기록한 여세를 몰아 올해 1000억원대 매출 돌파를 확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활기를 띤 메트로이더넷사업이 건재하고 새로운 전략사업인 VDSL부문의 전망도 밝아 올해도 성적이 좋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다산네트웍스가 올해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난해 무섭게 떠오른 신규업체의 거센 도전을 뿌리쳐야 한다. 지난해 다산네트웍스와 중소형급 메트로이더넷 스위치시장을 양분한 로커스네트웍스, 지난해 VDSL시장을 싹쓸이한 텔슨정보통신·미리넷, 외산업체들이 독식해온 L4스위치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파이오링크 등 어느 하나도 가볍게 볼 만한 상황이 아니다.
특히 이들 신흥 강호는 올해 매출목표를 작년 대비 2배 이상 늘려잡으며 공격경영에 나서고 있어 더욱 기대를 모은다.
이밖에 엠엠씨테크놀로지·아크로웨이브 등 무선랜업체도 올해 무선랜시장 활성화를 틈타 선두권 대열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지난해 잠시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인 코어세스·기가링크 등도 절치부심해 올해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있다. 코어세스는 지난해 부진을 면치 못했으나 올들어 57Mbps급 4밴드 VDSL장비를 세계 최초로 선보인 데 이어 고성능 기업용 메트로이더넷 스위치를 잇따라 발표하며 초반 주도권 확보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을 개선한 기가링크도 올해 최대 이슈로 떠오른 VDSL사업에 전력을 기울이며 과거의 영화 회복에 나선 상태다.
지난 2년간 침체기를 겪으면서 기술력으로 무장한 업체들로 개편되고 있는 국내 네트워크장비시장에서 과연 어느 업체가 최후의 승자로 남을지 2003년 12월 최종 라운드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지켜볼 일이다.
■네트워크장비 부문별 전망
2003년 네트워크장비시장은 지난 2000년부터 계속된 불황으로 인해 다소 침체될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서도 하반기께는 신개념 장비의 부상에 힘입어 회복세로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지배적이다. 업계 전문가들의 부문별 전망을 통해 올해 네트워크장비시장의 흐름을 예측해본다.
◇VDSL(김지일 텔슨정보통신 사장)=올해 VDSL시장은 KT뿐 아니라 하나로통신·데이콤·온세통신 등의 통신사업자들이 경쟁적으로 VDSL사업에 나설 것으로 보여 3000억원대에 이르는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술적으로는 지난해까지 2밴드 QAM방식의 13Mbps급 장비가 시장을 주도해왔으나 올해부터는 20Mbps급 2밴드 및 4밴드 장비가 시장의 중심을 이루고 하반기에는 DMT방식의 VDSL장비가 선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VDSL시장의 주요 변수로는 QAM과 DMT 진영간 표준화 경쟁을 들 수 있다. 두 방식 모두 장단점이 있어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인데 어느 방식이 단일표준이 될지 또는 두 방식 모두 표준으로 채택될지에 따라 시장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무선랜(이주열 아크로웨이브 연구소장)=2003년은 무선랜이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이하는 해가 될 전망이다. 특히 KT·하나로통신 등이 투자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무선랜 기반 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강화할 것으로 보여 무선랜시장 활성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더불어 SK텔레콤과 KTF 등 이동통신사업자들도 CDMA 통신망과 연계한 무선랜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통신사업자를 중심으로 국내 무선랜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무선랜은 54Mbps급 속도지원이 가능한 IEEE802.11a/g 등의 출현을 비롯해 유선네트워크에서나 누릴 수 있던 QoS(Quality of Service)·보안·가상랜(VLAN) 등의 부가기능 지원, 이동통신과의 결합 등으로 인해 유선랜을 대체하는 기술은 물론 이동통신기술을 보완하는 기술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광전송장비(박동준 한국루슨트테크놀로지스 책임연구원)=올해 광전송시장에서는 광회선분배기(OXC)와 MSPP(Multi Service Provisional Platform) 기술이 가장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차세대 지능형 광전송망으로의 진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소개되기 시작한 OXC 장비의 도입 여부는 올해 업계의 최대 이슈다. OXC 장비는 최근 데이터 트래픽 급증에 대처하기 위한 해법으로 통신사업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어 도입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데이터 트래픽의 신뢰성이 요구되는 액세스와 메트로 구간의 서비스를 위해서는 MSPP 기반 광전송장비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MSPP는 초고속인터넷처럼 많은 대역폭을 요구하는 서비스에 효과적인 솔루션으로 이를 구현하는 EoS(Ethernet over SDH) 방식은 이미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이런 MSPP장비는 주로 전용선서비스·VDSL·IMT2000 등과 같이 높은 신뢰성과 보안이 요구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사업자들에서 수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메트로이더넷(이상원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부장)=종전까지 국내 메트로이더넷서비스의 주류를 이뤄온 것은 게임방이나 아파트 단지를 주요 마켓으로 하는 단순한 레이어3(L3)급 인터넷서비스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몇몇 통신사업자가 한정된 권역이나 사용자를 대상으로 레이어2(L2) 가상사설망(VPN) 개념의 전용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추세는 올 한해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메트로이더넷은 VDSL·무선랜 등과 함께 일반서비스망의 커다란 영역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특히 원거리통신망(WAN) 전용선서비스가 고가의 서비스로 존재하는 현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고속서비스가 가능한 메트로이더넷이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앞서 언급한 L2 VPN의 등장은 기존 IPSec·MPLS VPN이 주요 서비스를 이루던 VPN시장에도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