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맨해튼은 유난히도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지난 2000년에 발생한 무역센터 붕괴사건의 여파가 아직도 일부 남아 있어 출퇴근 시간만 되면 교통지옥이 되기는 하지만 아직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한 고층건물이 숲을 이루고 있다. 또 멀리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은 언제 이곳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했느냐는 듯 한가롭기만 하다.
특히 맨해튼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에는 항상 뭔가를 보러온 사람들로 북적댄다.
할리우드가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본산이라면 이곳은 ‘뮤지컬’로 대별되는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곳 브로드웨이 주변에는 약 50개에 이르는 극장이 모여 있음에도 대부분의 티켓이 항상 매진이다. 공연시간이 임박하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온 인파로 통행이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브로드웨이의 공연이 사랑을 받는 문화상품으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리에 공연중인 뮤지컬 ‘라이언킹’ 하나만 보더라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뮤지컬 ‘라이언킹’은 이미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전세계 관객에게 친숙해진 ‘라이언킹’을 무대에 올린 작품으로 배우들의 분장 하나만으로도 보는 이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력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관객들이 대부분 애니메이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 쉽게 동화되고 즐거워한다. 특히 배우 가운데는 애니메이션 작품에 성우로 등장했던 인사도 끼어 있어 목소리만으로도 애니메이션과 하나인 느낌을 전해준다.
콘텐츠라고 하면 너무 상업주의적인 것이어서 수준이 떨어진다거나 순수 문화·예술 작품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보는 우리의 풍토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뮤지컬 ‘라인언킹’은 특히 문화콘텐츠가 대부분 기존 문화·예술 작품을 DB화하거나 이를 소재로 새로운 작품의 형태로 제작해온 것과는 반대로 애니메이션이라는 콘텐츠를 소재로 공연 작품을 만들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순수 문화·예술과 엔터테인먼트간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문화산업은 철저한 상업주의에 기초해 이루어진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및 각종 놀이시설이나 게임, 테마파크 등은 물론 공연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공연활동까지도 산업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연극이나 뮤지컬, 콘서트 등의 공연을 순수예술이 아닌 산업적인 차원에서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연극이나 뮤지컬 등을 순수 문화·예술 활동으로 분류해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수익을 내고, 그 수익을 바탕으로 보다 높은 수준의 작품을 준비하는 등 일련의 과정이 원활하게 순환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지원 방식을 산업과 동일하게 전환해 우리의 공연 기획사나 에이전트 등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칫 우리의 문화가 상업주의에 물들어 저속한 문화로 타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문화란 생활속에서 피어나야만 살아있는 문화로서 존재 가치가 있다.
더구나 미국은 이제 200년 정도에 불과한 짧은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음에도 바로 그 상업주의적인 마인드로 만든 문화상품을 가지고 세계 곳곳에 자신들의 문화를 퍼뜨리고 있다는 점은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뉴욕=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패트릭 최 사장이 말하는 성공비결
“제가 제작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9살때 부친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교육을 받으면서 미국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덕분입니다. 여기에 초창기 딜러로 활동하면서 할리우드에서 사람들을 하나하나 사귀어가면서 많은 인맥을 쌓은 것이 주효했죠. 물론 운도 따라줬습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 2세인 패트릭 D 최 사장은 한국 문화콘텐츠 업계의 미국진출 가능성에 대해 ‘할리우드는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시장’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한다. 물론 전제조건은 있다. 영어가 되고 현지에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현지화된 사고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사장은 뉴욕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오라클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하다 지난 89년 할리우드에서 딜러로 영화업계에 뛰어들었다. 초기 4년간 미국 영화를 한국시장에 배급해오다 지난 94년부터 직접 제작에 나서 브리지드 닐슨 주연의 ‘터미널포스(Terminal Force)’와 스티븐 시걸 주연의 ‘페트리어트(Patriot)’를 비롯해 최근까지 총 12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특히 지난 2000년에는 ‘더 와처(The Watcher)’라는 영화로 2주간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면서 할리우드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독립 제작자로 떠올랐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메이저사와 연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7개 메이저사가 전체의 80∼85%를 직접 제작해 배급하는 관계로 대부분의 독립제작사들은 예고편을 만들어 홍보하고 판매한 연후에 이를 담보로 자금을 유치해 제작하는 프리세일즈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최 사장은 할리우드에 기반이 전혀 없는 한국 영화계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현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 영화산업의 구조가 한국과는 판이한 데다 문화는 물론 촬영기술과 방법 및 인적 자원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고 파이낸싱 및 배급·영화관 섭외 등에 필요한 계약의 종류와 방법 등도 다양해 이에 적응하지 않고서는 흥행작을 만들 수 없다는 설명이다.
최 사장은 이어 “최근 한국 사이더스사와 ‘라운 드라이 워리어’라는 액션영화를 공동 제작중이며 H스튜디오와 TV용 애니메이션인 ‘포테이토 플러넷’을 공동제작키로 계약, 예고편을 제작해 현지 방송사와 접촉을 벌이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업체들과 협력해 할리우드 현지에서 작가와 배우 및 감독을 섭외하고 한국 인력도 투입해 현지에서 흥행할 수 있는 영화를 제작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영화인력들이 미국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많은 노하우와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 영화업계에서도 우선은 배운다는 자세로 미국시장에 접근해야 하며 정부 차원에서도 한국 영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현지화를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스앤젤레스=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美 문화콘텐츠 심의는..
미국의 문화산업 내용물과 관련한 내용 규제는 업계나 시민단체 및 학부모단체의 자율심의를 기본으로 진행되고 있다.
분야별로 심의기관이나 방법이 다르기는 하지만 심의기준은 폭력성과 선정성·저속어 등을 기본으로 등급을 정하는 형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위반에 대해서는 별도의 행정처분 또는 처벌없이 시민들의 자율적인 사용제한이나 소비자들에게 입힌 피해에 대한 법적소송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제한을 가한다.
영화의 경우는 미국영화협회(MPAA)가 지난 68년부터 내용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관장하는 등급위원회에서는 주제·폭력성·저속어·성적표현·약물남용 등의 요소를 기준으로 등급을 정한다.
방송사의 경우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규제를 받고 있으나 수정헌법과 연방법에 따라 FCC가 방송 내용물을 검열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66년 통신법이 개정되면서 FCC는 청소년을 유해내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2000년 1월까지 모든 TV 제조업체가 13인치 이상의 전 모델에 방송 프로그램 등급평가기술인 V칩을 내장할 것을 요구했다.
또 같은 해 의회에서는 방송업계에 자율적 등급평가시스템 도입을 요구해 미국방송연합회와 미국케이블TV연합회, MPAA가 함께 성적표현·저속어·폭력성·외설적대화 등을 기준으로 한 자율적 심의 기준을 마련해 내용물을 6단계로 구분,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폭력적 팬터지에 대한 내용을 추가했다.
최근들어 내용물과 관련된 가장 큰 이슈는 인터넷콘텐츠에 대한 등급평가다. 이는 인터넷콘텐츠평가협회(ICRA)의 라벨링 시스템과 세이프서프(SafeSurf)의 등급평가시스템 등 여러 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다. ICRA에서는 폭력성·성적표현·노출·저속어 등 4가지를 기준으로 0∼4의 등급을 매겨오다 최근 콘텐츠 제공업체가 자율적으로 기술표준인 인터넷콘텐츠 선택 플랫폼(PICS)을 내장해 사용자로 하여금 콘텐츠 선택의 유연성을 갖게 하는 자율시스템으로 발전했다.
세이프서프의 경우 성적요소·인종·종교·폭력·약물남용·도박행위·기타 성인주제 등과 관련해 9개의 등급으로 내용물을 구분하는 다소 복잡한 체계를 갖고 있다.
<뉴욕=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