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진 인터넷/홍윤선 지음/굿인포메이션 펴냄
인터넷은 이미 그 탄생 때부터 논란거리였다. 인터넷이 엮어내는 새로운 세상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본 낙관론이 득세했는가 하면, 정보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비관론이 그 뒤를 이었고 또 인터넷의 추이를 좀 더 지켜보자는 유보론도 있었다.
홍윤선의 ‘딜레마에 빠진 인터넷’은 인터넷의 미래전망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인터넷문화 비평서다. 언뜻 보기에 이 책은 수많은 인터넷 관련 도서목록에 새로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책표지에 간략히 소개되고 있는 저자의 약력은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이 여느 책과는 달리 녹록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386세대’를 자처하는 저자는 89년 PC통신 접속을 시작으로 95년 삼성SDS 유니텔의 마케팅팀장, 99년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띠앙’의 대표이사 직함에 이르기까지 한국 인터넷의 탄생과 성숙을 비즈니스 최전선에서 지켜본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21세기를 레고 블록과 같은 세상, 해체와 재조립의 시대라고 단언하고 이를 해독하는 새로운 키워드로 ‘인터넷’을 제시한다. 상업주의와 정보불균형의 문제, 우리나라의 이중적인 성문화와 사이버포르노의 범람, 정보과잉과 집중력 저하증후군, 게임과 채팅중독, 정체성 혼란과 소비대상으로서의 네티즌, 사이버범죄와 일탈의 문제 등 우리가 인터넷 공간에서 목도하는 주요 현상들은 인터넷 비즈니스 현장에서 겪은 저자의 생생한 체험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해체되고 재해석되며 재조립된다.
그가 본 오늘의 인터넷 세상은 해체와 재조합이라는 현대사회의 자기서술이 확대 재생산된 것이며 그런 점에서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에 다름아니다. 이 거울 속에는 정보불균형과 정보과잉, 접속증후군,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각종 일탈행위, 소비의 객체로 전락돼 가는 사람들의 자화상이 파노라마처럼 비쳐지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채팅이나 게임과 관련해 불거지고 있는 각종 문제를 내부 고발자의 시각에서 풀어가는 대목은 복잡한 퍼즐 게임의 해답을 훔쳐보듯 긴장되고 흥미롭다.
인터넷은 경제적 희망과 사회적 절망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얼굴의 야누스다. 잔뜩 기대하고 들어간 ‘정보의 바다’ 속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찾기는커녕 아까운 시간과 사고력만 낭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무료라고 하면서 유혹하는 회원제 사이트들이 걸핏하면 주민등록번호와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고객 관리와 타깃 마케팅을 위해 필요한 주민등록번호는 그 소유자가 여기저기 흘린 전자 데이터를 한데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실마리가 되며, 이와 동시에 정보노출과 프라이버시 침해의 위험성도 높아진다.
저자는 인터넷의 이같은 문제와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이 속에서 절망과 실망보다는 희망과 진보의 메시지를 본다. 우리가 인터넷의 주체인지 아니면 종속된 존재인지 되묻고 순기능과 역기능이 혼재된 인터넷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일침을 가하면서도 우리가 정보의 소비대상으로 격하되지 않고 정보소비의 주체로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새로운 인터넷 문화를 창출해야 한다고 저자가 역설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딜레마에 빠진 인터넷’은 우리나라의 정보화 열풍, 인터넷 신천지의 한 가운데 서 있던 저자의 생생한 체험과 묵직한 암묵지가 어우러져 탄생한 현장보고서로서 손색이 없다. 저자가 분석한 인터넷 딜레마의 종국적 해결은 총론보다는 각론으로, 특히 행위 주체별 그리고 사안별로 상이하게 모색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이 만들어 내는 역설적 세계를 헤집고 ‘구름 위의 비행’을 한 저자가 이 책에서 제기한 여러 문제와 현안에 대해 단계적이고 세분화된 해법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김종길 덕성여대 교수 way21@duk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