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타워]슈링크

◆이재구 정보가전부 차장 jklee@etnews.co.kr

 

 해마다 연초가 되면 전자업계의 이목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동계 가전쇼(CES)에 집중된다. 2003년 CES 행사는 이미 컴덱스쇼라는 세계적인 IT전시회가 9·11사태 이후 거의 유명무실하게 되는 등 위상 축소를 겪은 후 열린 첫 행사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거리였다. 올해 전시회에서는 특히 홈네트워킹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디지털가전의 융복합, 이른바 컨버전스(Convergence)가 주목을 끌었다.

 ‘컨버전스’는 말 그대로 기존 가전정보기기들의 장점들을 복합적으로 설계하거나 융합해 편의성을 제공하자는 개념이다. 물론 산업계에는 더 높은 경제성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 새 정부 정권인수위의 움직임을 보면 우리의 IT관련 전략이나 정책부문은 이런 미래산업에 대한 흐름이나 시각과는 너무 동떨어져 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IT·전자관련 업계는 컨버전스 개념을 적용해 휴대폰과 카메라를 결합시켰고, DVD플레이어와 디지털TV가 결합된 제품을 내놓고 있는 데다 대화형TV까지 개발해 본격적인 보급을 모색 중이다. 컨버전스는 이처럼 창의력을 바탕으로 제품 기능상의 장점을 결합시켜 더욱 쓸모있고 가치있게 만들어가고 있다.

 IT전문가들이 이처럼 경쟁적으로 컨버전스라는 미래 IT를 지향하는 얘기는 선거공약이던 IT수석제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밝힌 대통령직인수위의 움직임과도 연계돼 있다고 본다.

 꼭 대통령직인수위가 하지 않더라도 새 정권의 정책집행자는 사고방식과 향후 정책에 있어 미래산업의 맨 앞줄에 있는 IT산업의 새로운 트렌드 등을 감안한 다양한 정책적 조율과 기를 북돋우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본다.

 이미 겪었듯이 산자부·정통부·문화부의 각종 전자 IT콘텐츠 관련 정책을 조율하는 부분은 장관 재량으로 하더라도 수많은 협력과 보완이 필요하다. 업계가 산업의 컨버전스화 진전에 따른 종합적 조망과 함께 컨버전스 트렌드를 반영한 정책적 조율을 기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물 건너간 IT수석제’를 둘러싼 업계의 실망스런 분위기 속에서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컨버전스 추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함께 IT업계에 필요한 비를 내려주고 북돋워주는 레인메이커(rainmaker) 역이다.

 미국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히 교수는 어느 분야에서나 그 분야의 일을 최고로 잘하는 전문가인 기크(geek)들과 이들의 성향을 잘 분석하고 이들의 기를 돋워주는 슈링크(shrink:정신분석학자)가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대통령 선거공약이던 IT수석제 신설에 대해 대통령직인수위가 뚜렷한 언급을 않은 것은 IT 기크들을 실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마침 엊그제 개막된 다보스 세계 경제포럼에서 한국의 IT지수가 2년 만에 8단계나 떨어진 나라가 돼버렸다는 보고서가 나와 있다.

 새 정권의 정책집행자, 특히 IT정책 관계자들에게 굳이 IT수석이란 제도적 틀에 기대지 않더라도 최근 컨버전스시대의 트렌드를 감안, IT시대 수많은 기크의 기를 살리는 진정한 슈링크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