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명절 연휴라도 그냥 보내기엔 왠지 섭섭한게 사람 마음이다. 평소 보고 싶은 영화 한편이라도 해치워야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생기게 마련. 몇시간 짬을 내 온 가족이 모여서 보든, 혼자 쓸쓸하게 보든 처지는 달라도 영화 한편이 사람 마음을 훈훈하게 혹은 즐겁게 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차례음식을 먹으며 편안하게 누워 영화 한편 때리자. 최근 출시된 비디오와 DVD타이틀 가운데 가족 드라마, 즐거운 코미디, 할리우드 액션, 멜로 영화 등 취향에 따라 각각 4편씩 볼만한 작품 16개를 선정해봤다.
◇ 그래도 명절이니... 가족 드라마 4선=역시나 명절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제격이다. 집으로, 스튜어트 리틀2, 아이엠샘, 어바웃어보이 등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영화 4편을 추천한다.
‘집으로’야 두 말할 것도 없는 가족 드라마. 77세 할머니와 7살짜리 손자의 동거가 때로는 감동적인 눈물을, 때로는 흐뭇한 웃음으로 다가온다. 시골 할머니와 도시 아이의 생각차이, 세대차이, 문화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지만 갈등이 곧 깊은 신뢰와 사랑으로 변해가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아이엠 샘’ 역시 두번째라면 서러워 할 가족 드라마. 지적 장애로 7살의 지능을 갖고 있는 ‘바보’ 아빠의 깊은 부정과 아빠보다 정신연령이 더 높은 ‘지혜로운’ 딸의 애틋한 사랑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러닝타임 내내 흘러나오는 비틀즈의 음악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묘미.
‘어바웃어보이’는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결혼을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독신남 윌(휴 그랜드 분)이 12살짜리 왕따 소년 마커스를 만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세상은 홀로 섬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성숙해진다는 고전적인 스토리지만 젊은 사람들의 감각에 맞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스튜어트 리틀2’는 전작을 잇는 애니메이션 드라마. 150여명이 넘는 애니메이터와 디지털 테크니션으로 이루어진 할리우드 최고의 드림팀이 특수효과를 맡아 훨씬 더 볼거리가 풍부해졌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다소 유치할지 모르지만 아이들과 같이 보기에는 괜찮은 영화다.
◇ 부담없이 웃고 싶다면... 코미디 4선=재미있는 코미디는 언제 봐도 즐겁다. 가문의 영광, YMCA야구단, 몽정기 등 지난해 추석과 11월 극장가를 휩쓴 영화 3편에다 덤으로 이달 출시된 굳세어라 금순아를 추천한다.
‘가문의 영광’을 아직 못 본 사람이라면 이번 명절 때 놓치지 말길. 이 영화를 보고 재미없다고 한 사람이 거의 없으니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유동근의 코미디 연기는 거의 지존에 올랐다고 할 만큼 압권이다. 명문대 출신 벤처기업가와 조폭가 딸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에, 조폭이 맛깔스러운 양념역할을 충분히 한다.
YMCA야구단 역시 묻히기 아까운 작품. 100년 전 출현한 우리나라 최초의 야구단의 활약상을 그린 이 작품은 단지 재밌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의 간접경험을 톡톡히 하게 해준다. 송강호와 신구의 콤비연기는 언제봐도 재밌다.
가족끼리 보면 좀 머쓱한 영화 ‘몽정기’는 아이들의 정서를 알고 싶은 부모들이라면 꼭 봐야하는 영화.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영화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그저 즐기길...
‘굳세어라 금순아’는 배두나와 김태우가 주연한 열혈 아줌마의 남편 구출기다. 룸살롱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남편을 구출하기 위해 배두나가 아이를 업고 종횡무진 설친다.
◇ 박진감이 그립다면... 할리우드 액션 4선=트리플X, 익스트림ops, 썸오브올피어스,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보며 명절 피로를 한방에 날려버리자.
‘트리플X’와 ‘익스트림ops’는 겨울철 익스트림 스포츠의 진수를 보이는 눈이 시원한 영화. 이 가운데 트리플X는 007류의 전형적인 스파이 영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파이상을 보여준다. 정장대신 쫄티를 입고 문신을 새긴 트리플X의 존재는 스파이 영화에도 젊은 취향이 녹아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익스트림ops는 겨울철 익스트림 스포츠의 볼거리와 액션영화의 긴장감을 적절히 결합한 블록버스터. 스카이다이빙, 산악자전거, 급류타기의 공식 종목은 그저 눈요깃거리에 불과하고 달리는 기차위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날리고 기차 뒤에 매달려 스노보드를 타는 등의 스포츠 무한액션 세계가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작품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가 만났으니 그 규모는 짐작이 간다. 미래의 범죄를 예고하고 이를 미리 차단하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 의해 범죄자가 되어버린 요원의 숨막히는 대결이 볼거리다.
‘썸 오브 올 피어스’는 핵무기를 소재로 한 다소 진부한 미국 영웅주의 작품이지만 벤 애플릭과 모건 프리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볼 만하다.
◇ 사랑이여 영원하라... 멜로 4선=가족이 함께 보기는 좀 그렇지만 부부끼리, 혹은 연인끼리, 그도저도 아니면 혼자라도 볼 만한 멜로영화에도 눈길을 줄 만하다.
중독, 밀애, 오아시스, 연애소설은 코미디 연애가 판치는 영화가에 그래도 진지한 시선으로 사랑을 묻는 작품들이다. ‘중독’은 시동생과 형수의 사랑, ‘오아시스’는 지체 장애인과 밑바닥 인생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 모두 다 지독한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 중독은 마지막 반전이, 오아시스는 설경구와 문소리의 연기가 볼 만하다.
‘밀애’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아찾기를 시도하는 작품이다.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젊은 여자보다는 중년 여성이 선호하는 영화. 명절 때 보기는 다소 무거운 주제지만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는 생각이 들 때 한번쯤 보면 좋다. 그저 풋풋한 사랑얘기로 짐작가는 ‘연애소설’은 우정과 사랑의 엇갈린 이야기가 보는 이의 눈물을 짓게 할 정도로 절절하게 흘러나온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