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경제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는데 일익을 담당한 것은 다름아닌 지식기반경제로 함축되는 ‘신경제’다.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고 시장선점 효과가 무엇보다 커 기존 구경제의 이론과는 확인히 구별되는 신경제는 현 정부의 정책적 프로모션에 힘입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각광받았다.
정부는 특히 신경제 육성을 위해 △벤처붐 조성 △코스닥시장 활성화 △초고속정보통신망 확충 등 과감한 육성책을 내놓음으로써 IMF 조기졸업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인터넷 네트워크를 활용, ‘닷컴비즈니스’가 21세기형 국가기반산업으로 부상, 구경제의 대국 일본조차 벤치마킹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부의 지나친 신경제 우선 정책은 결과적으로 엄청난 후유증을 양산하며 절반의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다. 신경제를 구경제와 차별화되는 미래 경제패러다임으로 과대 포장, 심각한 역효과를 가져온 것. KTB네트워크 김한섭 전무는 “너도나도 신경제라는 버스에 올라타기 위해 경쟁적으로 투자를 집중하는 과정에서 △인터넷 사용자 수의 급증 △정보통신 및 닷컴기업 투자급증 등이 발생했으나 이것이 결국 △과잉투자로 인한 계속투자 감소 △닷컴몰락 △IT장비 및 SW 동반침체 △코스닥시장 붕괴 등의 신경제 버블 사이클(bubble cycle)을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신경제의 급부상 과정에서 그동안 ‘한강의 기적’을 연출하며 수십년간 우리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했던 구경제 기업들이 ‘굴뚝업체’로 평가절하되며 적지않은 차별을 받았다는 점. 이같은 현상은 증권시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연간 매출 100억원 안팎 닷컴기업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반면 수천억원에서 수조원대의 매출을 내는 굴뚝업체들은 철저히 소외됐다.
신경제 기반의 기업도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닷컴기업을 포함한 벤처기업의 버블논란이 불거져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신경제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 달라지면서 자본의 ‘블랙홀’로 간주됐던 신경제기업에서 자본이 빠르게 이탈하기 시작했으며 주식시장이 장기침체로 접어들어 자금조달길이 막혀버린 것. 이 과정에서 신경제 기업들은 구경제 기업들의 차별에 못지않은 상당한 역차별을 감수해야만 했다.
한때 성공의 보증수표였던 ‘벤처’라는 꼬리표가 골칫거리로 바뀌었다. 민간 자본시장은 물론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대상에서도 신경제 관련기업들의 기업평가는 냉랭하다. 한 인터넷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인터넷에 비즈니스모델(BM)만 올려놓아도 단 몇분만에 수십억원의 엔젤자금을 챙기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젠 매출부족과 수익성이 약하다며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제가 이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확실한 성장엔진이라는 사실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수시장의 한계가 분명하고 부존자원이 취약한 우리나라로서는 지식기반산업 육성을 통해 신경제 중심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이미 대세다. 경제대국 일본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도 바로 신경제에 대응이 한국에 비해 늦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통산업인 구경제와 미래 성장엔진인 신경제를 어떻게 잘 조화시켜 나가느냐는 것. 이를 위해선 차기 정부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신·구경제의 균형적 육성을 위한 중장기적인 전략과 전술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즉 신경제의 강점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단점을 무시하거나 구경제의 패러다임으로 백안시했던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의 정부 5년 통치기간 동안 줄기차게 지적됐던 정책의 일관성 부재도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신경제의 종주국 미국이 진난 90년대에 기존 경제사이클을 무시하며 10년 호황을 구가했던 것도 일관성있는 신경제 발전전략의 테두리 안에서 차근차근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나간 결과 때문이란 게 주지의 사실이다.
IT벤처업계 관계자들은 “우리나라는 정보통신부·산업자원부·문화관광부 등 부처별로 기업분류부터 달라 애초부터 정책의 일관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구조적으로 유관 경제부처의 통합이 어렵다면 기능적 통폐합만이라도 차기정부에서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당 부서에 따라 정책의 수혜를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시스템하에선 신·구경제의 조화를 만들기 어렵다는 의미다.
거시 및 미시 정책 입안자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최근 대두된 인터넷 쇼핑몰 관련 BM 특허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이미 보편화된 일반 기술을 특허로 인정함으로써 업계 발전을 저해하고 특정 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하는 꼴이라는 비판이다.
“과거 구경제 육성의 실무를 맡았던 사람들이 신경제 시스템을 재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한 공무원의 자조섞인 말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워렌 버핏이 기업의 본질가치에 기초한 ‘가치투자’를 견지, 신경제 버블의 피해를 입지 않고 꾸준히 투자 수익을 올리는 것에서 시사하는게 많다”며 “차기 정부에선 신·구경제의 강점을 살려 우리경제가 한단계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
<도움말 주신 분> 김성호 인터넷기업협회 기획실장, 김한섭 KTB네트워크 전무, 신미남 퓨얼셀파워 사장, 양동우 기술신용보증기금 박사,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 이해진 NHN 사장 <가나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