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용 솔루션기업의 한국지사장들이 잇따라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한국지사장의 취약한 입지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최근 들어 다국적 SW업체의 국내 지사장들이 본사의 일방적인 인사발령이나 자진사퇴 형식으로 사장 자리를 떠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물론 외산 업체의 지사장 교체주기가 최장 3년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 공공연한 룰로 여겨질 만큼 ‘장기집권’ 사례가 드물기는 하지만 실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의 수순을 밟았던 과거와 달리 한국의 비즈니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본사의 일방적인 처분(?)이라며 이의를 제기하는 CEO도 늘고 있다.
◇현황=대표적인 시스템관리소프트웨어(SMS) 업체인 한국BMC는 손영진 사장이 지난달말부터 사장석을 비우면서 마케팅 담당 상무가 직무를 대행하고 있다. BMC측은 그 배경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그동안 한국지사의 영업·매출과 관련해 본사와 견해차이를 빚어온 손 사장이 최근 본사의 감사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갈등이 표면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손 사장은 해당 사안에 대해 본사와 협의를 진행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사장 경질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한국사이베이스도 지난해 11월 이상일 사장이 돌연 사임해 아태총괄 부사장의 직무대행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당시 이 사장의 사임배경에도 본사 회계감사와 맞물려 매출 관련 사안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매크로미디어도 지난해 7월 1년 8개월간 회사를 이끌어온 최성환 사장이 물러난 뒤 이경봉 사장이 취임했지만 12월 사임하는 등 1년새 두명의 CEO가 교체되면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왜 바뀌나=업계에서는 다국적 기업 국내 지사장의 위치가 실적과 보상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결정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의 독특한 시장 및 영업환경이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신임 지사장은 그동안 자신이 축적한 시장노하우와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1년 이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상당한 위기감을 갖게 돼 결국 저가 출혈경쟁과 이에 따른 부실한 사후관리 및 서비스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물론 지사장들의 잦은 이동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창출과 몸값상승이라는 개인적인 목표가 작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 두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관건=한국시장에서 지사장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매우 커 그들의 역량에 따라 다른 국가와 현저한 실적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자의든 타의든간에 실적에 대한 부담은 모든 CEO가 갖는 일반적인 고민이다. 하지만 실적만이 지사장 교체의 주된 원인은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한국BMC는 그동안 안정적인 매출실적을 보여왔다.
한 외국 SW업체의 CEO는 “실적만으로 사장을 교체하기는 힘들다”면서 “본사 차원의 정책이나 프로세스를 간과했거나 가격정책과 재고처리 과정 등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특히 본사와 고객 사이에서 적절한 조율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만큼 본사와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설득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