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체스챔피언 개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와 슈퍼컴퓨터 ‘딥 주니어 (Deep Junior)’가 벌이고 있는 세기적 체스대결 중 최근 4라운드가 끝났다. 총 6개의 게임 중 4게임이 완료된 현재 카스파로프와 딥 주니어는 각각 1승1패2무로 무승부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26일(이하 미국시각) 시작된 첫 대국에서는 카스파로프가 승리했다. 카스파로프는 이스라엘이 개발한 딥 주니어의 말들을 무섭게 몰아붙인 끝에 4시간만에 첫 승리를 따냈다. 1초 동안 2억수를 읽을 수 있는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Deep Blue)’에 지난 97년 패배한 설움을 1차전 승리로 카스파로프는 말끔히 씻어냈다.
반면 딥 주니어는 카스파로프의 공격에 대한 대응수를 찾기 위해 무려 25분간이나 수를 두지 않고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1차전보다 30분가량 일찍 끝난 2차전은 무승부였다. 하지만 참관객들 말에 따르면 2차전이 1차전보다 더 긴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소 긴장이 풀어진 탓일까. 카스파로프는 30일 있었던 3차전에서 패배의 쓴잔을 들었고 이어 2일 벌어진 4차전에서도 딥 주니어를 이기지 못하고 무승부로 게임을 끝냈다. 최종 대국은 오는 6일 벌어진다.
우리 나이로 올해 40살인 카스파로프는 76년 12세의 나이에 소련 주니어 챔피언에 등극한 이후 84년 이후 간헐적으로 패하기도 했으나 현재까지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체스계의 신화적 인물이다. 딥 주니어 역시 지난해 7월 세계 컴퓨터 체스 선수권 대회에서 공식 우승한 것을 비롯, 세 차례나 세계 챔피언 대회에서 우승한 ‘슈퍼컴퓨터계 체스 고수’다.
이번 대국을 지켜보면서 ‘인간 대 컴퓨터의 대결’이라는 단순한 호기심과 이벤트로만 행사가 흐르는 것 같아 아쉽다. 하이테크 기술이 점점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지금, ‘호기심’과 ‘이벤트’보다는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고민의 장’이 더 필요하다.
<국제부·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