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묵 경영기획실장 kmkim@etnews.co.kr
얼마전 인수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교수 몇 분과 차기정권의 정통부 장관으로 유력시 되는 국회의원, 그리고 IT 관련 협단체 대표들과 함께 오찬을 하게 됐다. 얘기는 자연스럽게 인수위의 활동에 집중됐다. 요약하자면 업계의 주장은 인수위의 활동이 대단히 실망스럽다는 것이었고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은 “다 알고 있으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식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양측의 파열음은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인터넷 대통령이란 수식어가 익숙해지기도 전에 10대 국정과제에 IT 부문이 빠지고 공약으로 내건 IT 수석직 신설이 물건너가는 양상을 보이자 관련업계의 정서는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현재 상황은 노 당선자에게 실망감을 넘어 묘한 배신감까지 느끼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여기에는 혹시 인수위가 IT를 경제와 산업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
“걱정하기엔 아직 때가 이르지 않느냐”는 식의 인수위측 현실인식은 그래서 너무 한가해 보인다. 경제성장 엔진으로서의 IT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또다른 요소를 고려해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식이다. 물론 정책은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되기 마련이다. 그 중요도는 사안의 시급성과 파급성을 따져 매겨진다. 따라서 사안을 바라보는 정책입안자의 현실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관련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여러가지 억측이 나돌고 있다. 첫번째는 정권 초기에 IT를 앞세울 경우 지난 선거에서 나타났던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세대와 익숙지 않은 구세대간 갈등이 한층 심화될지 모른다는 걱정에서 IT가 전면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또 하나는 김대중 정권이 IT를 앞세워 경제를 일으키는 작업을 했는데 또 IT를 내세운다는 게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분석이다. 이보다는 BT·NT 등 보다 참신한 아젠다를 선호한다는 얘기다. 이 두 가지 해석 모두 정치적으로는 이해 가능한 대목이지만 경제현장을 모르는 그야말로 한가한 발상이다.
백번 양보해 지금의 IT소외현상을 말 그대로 효율적인 정책추진을 위한 숨고르기 정도로 이해한다고 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여러 차례 겪은 개혁실패에서 얻은 반면교사의 교훈 때문이다. 초반에 강력한 개혁드라이브를 걸어도 중간에 정치적 이슈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허다한데 나중에 때를 기다려 추진하는 정책이 성공한 경우는 불행히도 거의 본적이 없다.
노 당선자 진영을 놓고 IT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사항은 선수(?)부재다. 자기문제만 아는 전문가들은 많은데 IT가 다른 영역과 상충될 경우 이를 조율하고 문제를 풀만한 행정경험이나 현장을 아는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10대 국정과제와 IT수석 신설의 예도 결국 이같은 선수부재가 빚은 결과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향후 펼쳐질 디지털 통합시대에 시장을 끌어갈 신산업은 어쩔 수 없이 산자, 정통, 문화, 과기영역 전반에 걸쳐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를 강력하게 조율하면서 경쟁구도를 만들려면 IT속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IT를 경제전반에 동력을 제공할 엔진이라고 인식한다면 이에 걸맞은 조직을 신설하고 인재를 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인터넷대란 한방에 전국의 통신망이 마비되는 우리 현실에서 인수위측이 그리는 IT강국의 모습이 진정 무엇인지 묻고 싶다.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 그리고 이 악순환이 일반 국민에게 이렇다할 성장엔진을 찾지 못해 오는 불안감으로 이어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