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장에 가면 참 깜찍한 휴대폰이 많습니다. 종류도 다양하구요. 새로운 모델들은 진열대 앞에 전시돼 스포트라이트를 받습니다. 주연 배우인 셈이죠. 하지만 새로운 모델에 밀린 구 모델들은 화려한 자리를 내주고 구석 한켠으로 밀려나는 운명을 맞습니다. 어찌보면 인생사와 크게 다르지 않죠.
인간이 산고의 고통이 크다면 휴대폰은 수정의 고통이 크다는 점이 다를까요. 휴대폰은 처음 상품기획팀에서 아이디어를 내면 마케팅·디자인·연구개발 등 관련부서 사람들이 모여 컨셉트회의를 합니다. 똑똑한 아이를 낳으려면 태교가 중요하듯 휴대폰도 최근 트렌드나 서비스 업체의 요구, 경쟁사 제품 등을 분석한 자료를 면밀히 분석해야만 우량아 탄생이 가능합니다.
수차례에 걸친 아이디어 회의 끝에 제품의 컨셉트가 정해지면 착상기인 디자인으로 들어갑니다. 디자이너는 휴대폰의 컨셉트를 설정한 후 스케치→컴퓨터드로잉→목업(모형폰)제작의 과정을 거쳐 디자인을 확정하고 샘플 제작에 들어갑니다.
샘플이 제작되면 개발팀은 휴대폰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을 합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조합해 실통화가 가능한 휴대폰을 만들어내죠. 마지막으로 체임버의 -30∼50 온도를 이겨내고 습도를 잘견디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연구실에서 생을 마감한 휴대폰이 더 많으니까 행운아인 셈이죠.
이렇게 산고를 거쳐 세상에 나온 휴대폰은 인간의 가장 친한 말벗으로 2∼3년을 살다 생을 마감합니다. 너무 짧죠. 드물게는 주인을 잘(?)만나 10년을 넘게 사는 휴대폰도 있지만 골동품이란 놀림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수명을 다한 휴대폰은 재생전문업체로 옮겨집니다. 생을 마감한 휴대폰은 장기를 이식합니다. 본체는 본체대로, 건전지는 건전지대로 새로운 생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일부는 중고 휴대폰으로 다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합니다.
해외로 ‘입양(?)’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셀룰러폰은 아직도 북미지역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최근에는 동남아에 불법적으로 입양된 휴대폰이 사회 문제화되기도 했죠. 휴대폰은 운명을 달리하더라도 재활용이 가능한 만큼 구형 휴대폰을 함부로 버리기보다는 재생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어떨까요.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