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덕 정보통신지적재산협회 부회장 sdjang@itipa.org
작년 6월 월드컵 당시 세계 어느 곳 어느 시대에도 없었던 700만 인파의 동일 목적 집회가 이 땅에서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IT강국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다. 그때 우리는 월드컵의 모멘텀을 적극 활용해 IT 선진국 유지·강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이구동성 외쳤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해가 바뀌어도 이 분야의 획기적인 변화와 발전을 바라는 시민에게 정책적인 비전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선거 때에는 양대 정당 모두 IT는 별 이슈가 없고 차별화할 것도 없다고 하며 IT공약은 강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새 정부가 들어서는 2003년 상반기에도 또 그냥 그렇게 갈 것인가.
건강할 때 건강을 조심해야 병을 얻지 않고 높을 때 내려갈 때를 생각해야 떨어지지 않으며 잘 나갈 때 적선을 해야 배고플 때 굶지 않는 것이 인생이요, 세상이다. IT강국이라고 외치는 순간 이미 그 강국의 자리는 흘러가 버리는 것. 지금이야말로 겸허한 자세로 비오는 날에 대비하는 정책적 지혜가 필요한 때다.
때마침 새 정부가 들어서고 전 산업부문에 새 정책을 마련한다고 하니 이런 때 우리 산업 중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IT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묘책들을 내놓았으면 좋겠다. 흔히 국가 정책이라고 대명제를 걸면 너무 크고 추상적인 과제만 생각할 수 있다. 이번만은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하며 현실 속에 산재한 문제들에 정확한 해법을 확실히 찾아내는 것을 보고 싶다.
우리가 진실로 IT강국이 되려면 국내에서만 잘할 것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 IT로서 세계교역을 통해 국부를 증대시켜야 할 것이며 세계 무대에서 정책적인 흐름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IT관련 세계 정책 주도 기관들과의 네트워크를 원활히 하고 중요 포럼들을 통해 우리 입장을 반영시키는 적극적 참여정신을 길러야 할 것이다.
유럽·미국 등지의 IT분야 국제회의에 참석해 보면 분명히 우리 자리가 있어야 할 의제인데도 우리 정부, 우리 기업 대표는 없다. 우리 정책, 우리 생각을 국제 기관·단체 등에 널리 펴서 전달하지 못하고 있어서야 어찌 진정한 세계 속의 IT선도국일 수 있겠는가.
기업들이 저마다 중국 진출의 중요성을 인식해 뛰고 있는 때에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있다. 중국은 자국 IT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대외협상을 하는 과감한 산업 지원정책을 폈다. 우리나라도 좀 더 과감한 입장에서 IT 세계화를 지원하는 정책을 펴야 경쟁에서 뒤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우리가 과거에 무역분쟁에 시달린 경험이 많아서인지 지금에 와서 국제적·법률적 공격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정부의 역할은 바로 이런 데에 있는 것, 범 무서워 산에 못 간대서야 어디 경찰국가 이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남에 못지 않는 기술과 지적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활용해 국익을 챙기기는커녕 오히려 사방에 로열티를 퍼주고 있는 것도 통탄할 문제다. 우리나라가 스스로 IT선도국이라고 자만에 빠져 점잔 빼고 있는 사이 실속 차리는 나라들은 IT를 바탕으로 한 지적재산을 부문별로 집대성해 라이선스 제도를 만들어 단체협상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동시에 지재권을 보호하고 있다.
최근에 무선통신 분야 최대 공동체라 할 수 있는 3GPP가 출범했고 일본의 DVD공동체는 일본정부가 강력 지원해 중국으로부터 로열티를 거뒀다. IT세계도 과거 통상문제가 개별 기업간의 분쟁 및 교섭에서 다자간 공동협상으로 변천한 것과 같이 블록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진짜 강국들의 눈치만 보느라 기술이라는 아까운 자산을 곡간에 쌓아 놓은 채 시장에 내놓고 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통신정책이라는 것이 노상 사업자간 세력다툼 같은 국내적 이슈에만 집중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대외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시키는 정책적 조치야말로 작지만 당장 필요하고 내실있는 개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