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가장 가깝게 접하는 생활가전, 그 속에서 숨쉬는 사람들, 피말리는 기업간 마케팅전쟁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이면의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전경원 기자의 눈으로 매주 독자 여러분께 배달합니다.
“삼성전자 ‘딤채’ 주세요.”
가전제품 대리점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딤채는 만도공조의 김치냉장고 브랜드다. 삼성전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메이커와 브랜드를 일치시키지 못한 소비자들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소비자들이야 그런 사정을 따질 일이 없지만 만도와 삼성 두 업체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속상한 ‘현상’이다.
딤채는 조선 중종 때 사용되던 ‘김치’의 옛말이다. 지난 95년 김치냉장고를 처음으로 상품화한 만도가 브랜드로 채택한 것이다. 사내공모를 통해 탄생한 ‘딤채’는 김장김치의 옛맛을 냉장고에서 그대로 느끼도록 한다는 의미다. 특히 딤채가 주는 단아하고 예쁜 느낌 때문에 좋은 반응을 얻었다.
만도가 짭짤한 재미를 보자 수십개 업체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나름의 튀는 브랜드를 들고 나왔다. 97년 삼성전자는 ‘삼성김칫독’을 선보였다. 99년에는 김치뿐 아니라 야채나 육류 등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다 맛있다’는 의미의 ‘다맛’으로 바꿨다.
LG전자도 99년 ‘김장독’을 내놨고 2001년 ‘1124’로 선회했다. 1124는 김장하기 가장 좋다는 11월 24일에 착안한 것. 대우전자도 2000년에는 ‘삼한사온’을 브랜드로 내세웠지만 이듬해 ‘진품’으로 개명했다.
중소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김치뱅크·맛드림·친정집 김치독·생생 맛순이·김채·김치맛독·맛나 등이다. 최근에는 ‘아삭’이나 ‘이쿨’ 등 상큼한 김치맛의 느낌을 살린 브랜드까지 등장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해외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연간 약 5000억원을 사용한다. 또 기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유명 연예인들에게 4억∼5억원씩, 연간 수십억원의 출연료를 지불하고 광고를 제작하는 등 자사 이미지 제고와 브랜드 알리기에 천문학적인 수의 거금을 선뜻 투자한다.
자동자부품회사인 만도공조의 간판상품이 어느새 김치냉장고로 바뀐 이유도 ‘딤채’에서 찾을 수 있다. 제품과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비밀의 열쇠는 바로 브랜드인 것이다.
<전경원기자 kwj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