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고유가 시대 `뒷짐진 정부`

◆산업기술부·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그토록 우려하던 에너지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기정사실화되면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35달러선을 돌파하고 각종 에너지 요금도 줄줄이 들썩거리고 있다.

 한국경제가 고유가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장기전으로 꼬일 경우 배럴당 50∼60달러에 이를 것이란 최악의 상황까지 우려하고 있다. 유가 급등세가 이어지자 정부는 뒤늦게 에너지절약 종합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대책으로 나온 것이 차량 10부제 운행, 조명 격등제, 3층 미만 승강기 운행금지 등이다. 범국민적인 에너지 절약운동으로 위기를 극복하자는 70년대 오일쇼크 당시의 에너지 대책이 녹음기처럼 되풀이되는 실정이다. 한집 한등 켜기식의 절약운동만으로 과연 고유가시대를 극복할 수 있을까.

 작금의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가장 현실적 대안은 국내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에너지 절감형으로 바꾸는 것이다. 각 기업들이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고도 제조활동이 가능하도록 에너지 절약형 생산설비로 바꿔야만 고유가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 시장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요즘 ESCO업계는 민간업체들의 에너지절약사업을 지원해야 할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다며 불만이 대단하다. 현재 ESCO사업에 지원될 정부융자금리는 지난해와 같은 5.25%. 최근 금융불안으로 일부 회사채금리가 5.2% 이하로 떨어진 상황에서 ESCO자금의 메리트는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굳이 에너지 설비투자를 ESCO자금에 의존할 이유가 없어지고 대기업의 설비투자가 잇따라 유보되면서 ESCO업체들은 고유가 시대에 때아닌 불황을 겪고 있다. 최근 에너지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ESCO업계에는 에너지설비 교체 문의가 쇄도하고 있지만 시중금리보다 높은 ESCO금리 때문에 정작 계약이 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가차원의 에너지 위기대책이 시급한 상황에서 정부가 산업계 에너지절약에 필수인 ESCO시장의 위축을 방치하는 것은 모순된 행동이다. 제조업체들이 스스로 에너지절약 체질로 바꿀 수 있도록 ESCO금리를 최소 4%대로 낮추는 정부대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