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보육기반 붕괴` 실태와 대책

 ‘더이상 벤처에는 먹을 것이 없다. 한시라도 빨리 손떼는 것이 그나마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대학, 지자체, 벤처캐피털, 벤처기업 등 벤처 클러스터의 핵심 구성요소 관계자들이 요즘 갖고 있는 생각이다.

 대학의 창업보육센터와 지자체 내 벤처집적시설의 사업반납이 급증하고 있으며 벤처육성촉진지구로 지정된 곳은 허명(虛名)뿐인 곳이 대부분이다.

 창업의 핵심 요소인 자금이 마른 것은 오래 전이다. 벤처캐피털의 투자재개는 아직도 안개 속을 헤매고 있으며 엔젤투자라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벤처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축이 여기저기서 삐걱거리고 있다.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되는 시점이다. 그동안 어렵게 구축해온 벤처 인프라만은 어떻게든 유지시켜 나가야 한다.

 ◇창업열기가 식다=벤처거품이 걷히면서 창업보육센터 입주를 원하는 창업초기기업 수가 크게 줄고 있다.

 실제 최근 이뤄진 서울산업진흥재단, 한국기술벤처재단 등 각 기관과 대학BI의 입주모집에서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이 예년에 비해 30∼40% 이상 줄었다.

 이와 함께 벤처산업의 모태로 불리는 서울벤처밸리(일명 테헤란밸리)의 벤처기업수도 2001년 말 1350여개에서 지난해 950여개로 한해 동안 400여개 이상 줄었다.

 지난해 추진된 벤처 요건강화에 따른 기업수 감소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요인의 벤처창업 열기가 식었기 때문이다. 벤처대박의 신화가 깨지면서 거품이 걷히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지만 그 침체의 골이 너무 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창업자금 유치는 하늘의 별따기=사상 최악의 투자실적의 보였던 벤처캐피털들의 지난해 투자경향을 분석하면 창업 초기 기업의 투자유치는 거의 없다.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의 실적을 보이는 창업후 성장단계의 기업에 투자가 집중돼 있다. 벤처캐피털들이 리스크를 최대한 줄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경향은 올해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실제 벤처캐피털의 2003년 투자계획을 살펴보면 신주인수 규모는 지난해 3367억원에서 올해 2393억원으로 줄어든 반면 CB·BW인수나 프로젝트 투자는 1312억원, 973억원에서 각각 2751억원, 1109억원으로 늘렸다.

 초기 기업의 경우 CB·BW나 프로젝트 투자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들 초기기업의 투자는 지난해보다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벤처집적시설·단지가 사라져간다=하지만 창업열기나 투자는 전반적인 경제상황이 좋아지면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쌓인 벤처관련 인프라 붕괴다.

 벤처창업의 산실이었던 창업보육센터와 집적시설, 벤처육성촉진지구들이 사업반납과 입주기업의 이탈로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벤처집적시설 감소의 원인은 벤처창업 붐이 사그라진 것과 운영기관의 운영부실을 들 수 있다.

 벤처거품이 걷히면서 실질적인 벤처창업이 크게 감소했다. 따라서 창업보육시설에 입주할 기업의 수, 수요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여기에는 대학내 창업열기 감소도 한몫을 했다. 수요가 줄어들면서 보육시설의 운영도 부실해졌다. 운영기관이 전문적인 경영 노하우를 갖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실은 집적시설 폐쇄로 이어졌다. 정부가 확장 중심의 사업추진으로 운영의지가 거의 없는 대학 및 기관에 사업을 위탁할 때부터 부실과 폐쇄는 예고됐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의 경우 정부 중앙부처와 지자체간 업무협조 미비, 이에 따른 재원부족이 사업부진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벤처집적시설 감소에 대한 다른 시각도 있기는 하다. 과잉시설이 감소하는 자연스런 조정단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 침체상황과 이에 따른 최저 수준의 벤처창업 현황을 감안할 때 현상태에 집적시설 규모를 맞춘다는 것은 장기적인 벤처육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반기부터 경기회복 기조가 시작되고 창업열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면 보육시설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것이고 이들을 수용할 집적시설에 대한 수요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현재의 창업벤처들을 위한 인큐베이팅 시설의 유지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정부의 직간접 지원이 확대돼야 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중기청 관계자도 “지난해 벤처 옥석가리기와 개정된 확인제도 시행에 따라 벤처기업수가 23%나 줄어들었고 집적기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시설들에 대한 시·도 차원의 실태점검과 과감한 지정 제외를 통해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 집적시설의 건실화 과정이 어느 정도 충족되는 올해부터 이런 급격한 기반약화가 진정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급격한 집적기반 약화가 지속적으로 이런 추세로 나갈 경우 장기적으로 벤처생태계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정부 및 지자체가 엄청난 재원을 들여 조성한 BI와 집적시설, 벤처육성촉진지구 등 벤처기반 조성사업이 운영모델과 수익모델의 부재, 추진기관간 협조미비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며 전반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박근태기자 runrun@etnews.co.kr>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