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남북간에 기본합의된 ‘평양·남포 일원에서의 CDMA 이동전화사업 및 국제전화 관문국 고도화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올 상반기중 후속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사업무산과 함께 남북한 통신 기술표준 협력도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시 남북한 통신협상을 기획하고 남한 대표단의 일원으로 협상에 참여한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당시 SK텔레콤 상무)은 “지난해 남북간 통신협상 이후 남북 및 북미 관계 변수로 인해 후속 진전이 없어 북측과 약속한 합의들이 물 건너갈 위기에 놓여있다”며 “올 상반기까지 진전이 없다면 남북 통신협상이 결렬될 가능성 있다”고 지적했다.
즉 남북간 기본합의의 ‘유효기간’이 만료돼가는 올 상반기중에 구체적인 후속조치와 결실이 맺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구 이사장은 “통신협상의 후속 개최는 남한에 의해 일단 중단된 측면이 강하다”며 “협상이 무산될 경우 남한이 추구해온 북한내 CDMA방식의 이동전화사업은 물론 남북한간 기술표준 문제에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북한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후속협상 지연에 대한 항의와 함께 우려를 전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남한은 지난해 6월 4일 정보통신부 고위간부 및 KT·SK텔레콤·삼성전자·LG전자·현대시스콤 등 관련업계 5사의 임원급 전문가로 구성된 대표단을 평양에 파견, 체신성 차관급 인사가 포함된 북한 대표단과 분단사상 첫 남북 통신협상을 갖고 평양·남포 일원에서 CDMA방식과 800㎒ 대역을 기반으로 한 이동전화사업과 국제전화 관문국 고도화사업을 공동추진키로 합의한 바 있다. 이어 정부와 KT·SK텔레콤 등은 ‘대북통신사업 컨소시엄’을 구성해 북한내 통신사업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당시 이동전화서비스 사업은 SK텔레콤 등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국제전화 관문국 고도화사업은 KT가 맡기로 역할을 분담키로 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조정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서해교전 사태로 예정됐던 2차 통신회담이 연기된데 이어 북미관계의 냉각이 지속되고 CDMA장비의 대북반출에 대해 미국이 부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후속 협의가 무기한 연기됐다.
이 과정에서 특히 정부 소관부처의 소극적인 정책 추진자세도 통신협상의 후속협의가 미뤄져온 것에 한 몫을 해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더욱이 정권교체기를 맞아 정부당국의 남북 통신협상 업무추진력이 더욱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이달 말 출범하는 새정부는 남북 통신협상 문제를 경협분야의 주요 과제로 삼아 본격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전문가 사이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CDMA기술을 보유한 퀄컴의 경우 관련장비의 대북반입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갖고서 미국정부를 설득하고 이 문제를 풀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퀄컴사는 어차피 앞으로 북한에서도 이동통신서비스가 확대될 것이라면 GSM방식보다는 CDMA방식의 기술이 들어가는 것이 사업적 측면에서 이득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구해우 이사장은 특히 “북한은 유럽형 GSM방식을 도입해 이동전화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면서 “남북간 통신사업 기본합의가 무산되면 북측의 이동전화 및 통신기술과 방식이 다른 3국에 넘어갈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북한은 현재 태국의 록슬리그룹과 공동으로 동북아시아전화통신회사(NEAT&T)를 설립해 지난해부터 GSM방식으로 이동전화서비스를 시험운용하고 있다.
록슬리사는 앞으로 북한지역 전체의 이동통신사업권을 노리고 GSM방식의 시범서비스를 나진·선봉지역에 이어 지난해 10월 평양·남포지역으로 확대했으며 올해는 신의주·개성 등 대도시로 점차 확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독일의 지멘스도 중장기적인 구도하에 평양에 GSM방식으로 시범망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북일간 수교협상 과정에서 경제협력 보상방식으로 북측에 보내지는 비용 중 약 10%가 통신인프라 구축용으로 투자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신의주특구에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화교들도 이동통신 사업권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처럼 북한에서 유럽형 GSM방식 이동통신서비스와 다른 국가들의 통신시장 진출이 확대될 경우 남한이 우위를 점해온 CDMA 이동통신서비스 대북진출은 물론 북한내 ‘CDMA 지지파’의 입지가 축소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CDMA방식의 이동전화서비스에 호감을 갖고 남측 기업들과 사업을 논의해온 북측의 테크노크라트들이 상부에 CDMA 도입을 지속적으로 건의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북 경협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기업 관계자는 “주변요인과 관계없이 남북간 통신협상은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경제협력은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면서 “기업 차원에서는 해결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에 정부차원의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