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인체의 신비전`과 전시문화

◆이헌규 국립중앙과학관장 hglee@nsm.go.kr

 

 서울과학관에서 요즘 열리고 있는 ‘인체의 신비전’에는 학생과 교사를 비롯하여 의사, 간호사, 회사원, 종교인, 예술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다. 관람객들의 태도는 매우 진지한데 그 반응도 ‘놀랍다, 신기하다, 경이롭다’거나 ‘끔찍하다, 두렵다, 진짜 같지 않다’ 등 다채롭다. 세계 과학기술관협회(ASTC)가 성공적인 전시를 위해 필요한 요인으로 제시하는 ‘놀랄 만한’ ‘희귀한’ ‘도전할 만한’ 전시요소를 갖춘 전시라고 할 만하다.

 이번 전시에는 10개월 만에 150만명 이상이 입장했다. 이웃나라 일본 오사카에서도 160만명이 관람하는 등 외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전시회가 가져다 준 교육적인 효과도 상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독일 카셀대학의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유럽에서 동 전시회에 입장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관람객의 9%가 담배와 음주량을 줄였으며, 25%가 운동량을 늘렸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인체의 신비전’은 왜 인기가 있을까. 혹자는 조상이 물려준 몸을 소중하게 여기고 훼손을 금기시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통념이 이번 전시에서 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우주처럼 복잡하고 오묘한 인체 내부의 장기나 근육, 핏줄 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를 이번 전시가 제공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무튼 전시를 위해 자신의 시신을 기꺼이 기증한 당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과학기술은 호기심을 충족하려고 하는 노력에 의해 발전해 왔다. 인체표본 제작기법을 개발한 군터 폰 하겐스 박사를 만나면 그가 의사일 뿐 아니라 과학자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해부학 분야의 오랜 연구경험을 바탕으로 플래스티네이션(plastination) 기술을 발명했는데, 그 발명의 동기가 정육점에서 일하는 여성이 햄을 자르는 모습을 보고 사람의 인체 부위도 슬라이스 형태로 자른 후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상상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끊임없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며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인체해부표본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우리의 전시문화에도 여러 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 먼저, 전시에 관한 연구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선진국들은 시·군 단위로 과학관이나 자연사박물관이 있어 전시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어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반면 국내에는 국공립·민간 모두를 통틀어 과학관이 50개 정도이기 때문에 전시 및 전시물에 관한 연구가 진행될 수 있는 시장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

 전시물 제작업체도 150여개에 이르고 있으나 대부분 영세하여 연구에 제대로 투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요사이 관람객들은 직접 만지고 작동해 보며 가슴으로 느낄수 있는 수준 높은 전시물을 요구한다. 조만간 수도권에 지어질 새 과학관이 첨단기술의 전시와 교육의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이 분야 연구가 활성화되고 국내 전시산업의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하다.

 둘째, 전시기획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 스미소니언 과학박물관이나 영국의 과학관 등 유수 기관들은 우리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 축적한 풍부한 역사적 자료와 매력적인 소장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근래에는 이들 소장품을 이용해서 새로운 드라마를 연출하는 특별전(음악기기전 등)을 가끔 개최한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상설전시만으로는 고객만족을 얻기 어려울 정도로 국민의 기대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정된 여건을 감안해서 마케팅 기능 강화와 더불어 각국의 전시현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국내외의 우수한 전시회를 특별히 유치하거나 별도의 기획전을 준비해야 한다. 동시에 고객감동을 목표로 다양한 테마의 기획전시를 늘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개발하는 업계와의 협력도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