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IT테마株]IT가 돌아야 증시가 산다

 국내 증시가 IT경기의 장기불황과 이라크전쟁·북핵문제 등 지정학적 위험요인 때문에 좀처럼 바닥권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몇년간 한국 증시를 지탱하며 ‘IT모멘텀’을 제공했던 삼성전자·SK텔레콤·KT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IT 블루칩들이 고질적인 수급불안과 외국인 등 시장 참여자들의 집중적인 매도공세로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고 있다. 여기에다 IMF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무디스의 신용등급 전망 하향조정 등 여러가지 외생변수들이 겹치면서 국내 증시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혼미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수 1000시대 진입이라는 꿈에 마냥 부풀어 있던 국내 주식시장이 이처럼 쇄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IT경기의 장기부진이 큰 원인으로 꼽힌다. 사실 지난 몇년간 국내 증시는 IT업종이 주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심 블루칩으로 꼽히는 삼성전자·SK텔레콤 등 대형 IT주의 주가 움직임에 거래소 종합주가지수가 탄력을 받고 나스닥에 상장된 미국 IT종목의 추이에 국내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현재 IT산업은 ‘양날의 칼’처럼 오히려 국내 주식시장의 숨통을 조이는 압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증시를 이끈다는 자부심에 충만해 있던 삼성전자·SK텔레콤 등 블루칩들이 하락장세에서 버팀목이 돼주기는커녕 오히려 하락을 부추기는 불씨가 된 듯한 느낌이다. 이들 핵심 블루칩의 하락세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국내 증시는 IMF 금융위기나 9·11 테러사태에 버금가는 패닉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이처럼 시장전망이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IT경기회복에 지렛대 역할을 하는 PC경기의 회복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고 반도체 가격의 하락추세도 진정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IT산업 내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위기의식은 점차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같은 IT산업의 경기부진은 지정학적 위기와 함께 국내 증시에 악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같은 부정적인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데 한국 IT산업과 증시 위기의 본질이 숨어 있다.

 ◇IT경기 과연 올해 증시 향방을 좌우하는 열쇠가 될 것인가=IT버블의 붕괴여파로 증시에서 IT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부분 희석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IT산업이 우리나라 경제의 원동력이자 한국 증시의 기대주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IT산업이 소생하지 않고선 결코 국가 경쟁력의 원천을 확보할 수 없으며 증시도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현재 이라크전쟁과 북핵문제 등 지정학적 위험요인이 국내 증시를 짓누르면서 IT산업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고 있지만 지정학적 위험요인이 해소되는 순간 또다시 IT경기회복이 증시 대세상승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올초 본지가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주식시장은 종합주가지수가 최고 1000선을 돌파할 것이란 기대감과 520선까지 하락할 것이란 우려감이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1000선 돌파 주장도 있지만 고작 700∼800선에 그칠 것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증권사들이 올해 내놓은 예상 종합주가지수가 이처럼 큰 편차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IT경기회복의 기대시점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따르면 3분기경 현재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반도체 가격이 상승세로 전환되고 본격적인 PC 교체수요 시기가 도래해 IT경기가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시나리오대로라면 경기를 선반영하는 주식시장의 특성상 하반기 이전에 주식시장의 호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다.

 굿모닝신한증권의 정의석 부장 역시 2003년 증시에선 IT업종의 주가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주식시장에서 ‘IT의 부활’ 가능성이 거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주가는 실적에 선행한다는 점 때문에 IT관련주의 주가회복 현상이 투자자들의 마음속에 강하게 각인될 것으로 내다봤는데 이는 지난 3년간 IT관련주들의 주가수준이 워낙 낮아진 상태여서 주가가 조금만 상승하더라도 주가의 상승률이 크게 나타나는 ‘기저효과(base effect)’ 현상을 향유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나리오에 따르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경제외적인 외생변수와 환율·유가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IT경기회복이 내년 이후로 늦춰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아무튼 긍정적 시나리오든 아니면 부정적 시나리오든 간에 IT경기회복이 증시활황의 전제조건이란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대우증권이 올초 발표한 ’2003년 주식시장 전망’ 자료는 “올해 시황의 핵심은 순환적인 측면의 경기상승에 IT경기가 어느 정도 접목되는지가 대세상승 전환속도를 결정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올해 IT경기의 큰 흐름은 미국에 의해 좌우되고 작은 흐름이나 계절적인 영향은 중국 효과(China effect)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IT경기의 부문별 차별화 심화될 듯=그렇다면 IT경기회복은 부문별로 어떤 양상을 띨까.

 업계 전문가들은 IT경기가 회복되더라도 IT부문별 회복속도는 차별화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소프트웨어·시스템통합(SI) 등 부문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휴대폰·디지털 가전·DVR 등 하드웨어 IT제품들은 비교적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올해 역시 이같은 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휴대폰·VDSL·인터넷·디스플레이 등의 종목을 중심으로 호조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IT부문별 차별화 현상은 미국 IT시장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동양투자증권이 내놓은 ‘한·미 기업의 4분기 이익 및 향후 전망’ 자료에 따르면 국내 IT경기에 민감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 IT산업의 경우 PC와 핸드세트 분야를 중심으로 회복조짐이 일고 있다. 아직 지난해 실적발표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HP·델 등 주요 컴퓨터업체들의 매출액이 지난해 3분기까지 전년대비 10.4% 증가했으며 4분기 실적발표가 완료되면 전체적으로 10% 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모토로라·퀄컴 등 핸드세트 관련 업체들의 경우 지난해 3분기까지 전년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으나 4분기 10.0%의 성장을 보여 핸드세트 시장의 회복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PC와 핸드세트 부문의 매출증가는 우리나라의 주력상품인 D램·TFT LCD·핸드세트 등의 수요증가를 의미하므로 국내 기업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란 게 동양투자증권의 분석이다.

 이에 반해 미국 역시 기업의 IT투자 동향을 반영하는 기업 전산부문은 투자위축의 영향으로 침체에서 탈출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결론적으로 IT산업의 경우 소비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재고조정이 용이한 PC와 핸드세트 부문은 비교적 회복속도가 빠른 반면 기업 투자에 대한 의존도가 크고 재고조정이 용이하지 않은 기업 전산부문의 회복은 상대적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IT산업, 성장단계에서 성숙단계로=IT경기가 회복국면에 들어가더라도 과거와 같은 큰 폭의 성장세를 기대하기 보다는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굿모닝신한증권의 정의석 부장은 지난 99년 전세계를 풍미했던 IT산업의 활황은 밀리니엄 버그(Y2K) 해소를 위한 IT수요의 확대와 인터넷 열풍 등에 힘입은 바가 크다며 현재 IT산업은 수요가 기술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요지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언급은 IT산업이 이제는 성장단계에서 한 단계 진전, 성숙단계에 진입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IT업종에 주어지던 성장성 프리미엄이 상당 부분 퇴색한 상태며 대다수 IT기업들이 고평가됐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향후 증시를 견인할 IT산업의 핵심 축은=90년대말 세계 IT경기는 밀레니엄 버그 문제와 인터넷의 열기에 편승, 활황세를 누렸고 그 핵심에 PC 및 관련 소프트웨어가 있었다. 이같은 IT산업 활황은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IT버블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IT버블이 무너지면서 그 틈새를 디지털가전·휴대폰·TFT LCD 등 부문이 메우며 국내 IT경기를 지탱해주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내 IT경기를 떠받칠 핵심 축은 무엇일까. 우선 증권가 IT애널리스트들은 디지털가전·포스트PC·3세대 이동전화 등의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이들 제품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디스플레이 관련 제품이 IT산업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PDP·TFT LCD 등 디스플레이 제품들이 다양한 이동통신기기나 포스트PC단말기·디지털가전 등에 채용되면서 IT산업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흔히 ‘유비쿼터스’ 업종으로 일컬어지는 3A(Anytime, Anywhere,Anydevice) 테마도 향후 IT산업의 성장엔진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을 전망이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수의 증가, 휴대폰 인구의 급증이라는 IT인프라를 기반으로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 홈네트워킹, 무선 인터넷, 포스트PC 등이 종적·횡적으로 결합하면서 유무선 통합의 물결이 거세게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추세를 반영해 앞으로 텔레메틱스·위치기반서비스(LBS)·무선랜·모바일금융서비스 등 다양한 3A테마 업종들이 국내 증시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