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IT산업부 차장 kwlee@etnews.co.kr
‘왕따’는 무서운 형벌이다. 다수의 뜻에 반하거나 조직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내리는 암묵적인 주위의 형벌이다. 이를 근절할 법적 제재조항도 없다. 국회에서 ‘왕따금지법안’을 통과시킨다고 생각해보자. 그 또한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행위 자체의 위법적인 소지도 뚜렷하지 않다. 또 위법을 따지기 전에 ‘왕따’란 말을 법적 용어로까지 등장시킨 사회혼란의 책임소재 또한 명확하지 않다. 그저 하루 빨리 치료해야 할 사회의 문화병으로밖에 특별한 대책이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따’는 일시적인 사회병리현상이나 시대적인 사회상으로 묻기에는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왕따’를 당하는 당사자의 심리적 고통도 고통이려니와 사회생산성 면에서 ‘왕따’는 큰 마이너스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 큰 문제는 ‘왕따’라는 형벌을 내리는 주체다. 다수라는 이유로 어떤 법적 권한도 없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집행하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포용보다 아예 도태시켜 버리는 행위로 자신들의 우월성을 나타내려는 집단주의의 횡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간과해 버리기에는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왕따현상이 최근에는 학교·직장의 벽을 넘어 산업에까지 번지고 있다.
현정부 초반 인터넷 관련 산업은 산업장학생이었다. 정부의 경제정책 최우선 순위에서 각종 지원혜택을 받았다. 투자자들 역시 정부의 정책을 믿고 과감하게 돈을 쏟아부었다. ‘묻지마 투자’의 부작용도 낳았지만 금융실명제 이후 음성적인 사채가 양성화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컸다.
이후 인터넷 관련 산업은 산업열등생으로 전락했다. 단기 실적에 조급증을 낸 나머지 인터넷 관련 산업에 대한 기대치를 하향수정했기 때문이다. 투자의 눈길이 사라진 뒤 인터넷 관련 산업은 ‘미운 오리새끼’를 넘어 관심의 대상에서조차 멀어졌다. ‘경제성장의 엔진’으로 치켜세우며 떠받들던 인터넷산업이 ‘왕따산업’으로 전락하는 데는 불과 2년 남짓이 소요됐다.
그렇다고 인터넷 관련 산업에 이은 ‘차세대 견인산업’이 대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산업장학생 선발의 오류라고 치더라도 재추천할 장학생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다. 이런 와중에 인터넷 관련 산업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분명 너무 섣부른 판단이다. 기업의 수종사업도 뿌리를 내리는 데 몇 년씩 걸린다. 하물며 수종산업은 더 말할 것 없다.
문제는 인터넷 관련 산업을 왕따시킨 주체들이다. 물론 기업들의 방만함이 원인을 제공했지만 그 주체들이 불과 몇 년 전 인터넷을 국가 주도 성장산업으로 키운다고 주장한 정부와 인터넷에 맹신한 투자자들이라면 희극이 아닐 수 없다.
정권 말기 IT정책, 특히 인터넷 관련 정책은 실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역시 IT와 인터넷에 큰 뜻을 품은 것으로 비춰진 데 반해 차기 정부 정책 순위에서 밀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업계로서는 역시 ‘왕따’당했구나 하는 자괴감이 스며드는 대목이다.
학교에서 시작된 따돌림을 정부와 산업계가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 싶다. 조급증이 성장잠재력이 있을지 모를 산업을 너무 섣부르게 ‘왕따’시키는 게 아닌가 염려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