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DSL, 휴대폰 부품, 반도체장비, 무선랜, 유비쿼터스, 모바일인터넷, 텔레매틱스, 디지털가전, 엔터테인먼트, 로또, 환경….”
없던 것이 생겨나 한때 떴다가 다시 사그러들고 하는 것이 증권 시장의 테마주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갖가지 테마들이 시류에 따라 명멸할 것이다. 하지만 커다란 흐름에도 분명히 핵심을 이루는 주류는 있는 법이다. 올해 증시에도 1년을 관통하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을 주류 테마는 분명히 존재한다.
연초부터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테마는 역시 통신장비다. SK텔레콤, KT 등 7개 유무선 통신사업자의 올 투자규모가 총 7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관련 통신장비업체들이 직접적인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통신장비라는 큰 테두리안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진주같은 존재는 바로 유선부문의 VDSL과 무선부문의 WCDMA(비동기IMT2000) 관련 장비업체들이다.
우선 VDSL장비는 올해 통신장비분야 최대의 격전지이자, 해당업체에 있어서는 가장 가파른 실적호전이 기대되는 분야다. KT, 하나로통신 등 초고속인터넷사업자들이 지금까지 경쟁 초점이 됐던 ADSL을 넘어 VDSL서비스 전면전에 나서면서 관련 장비도입과 설비투자를 본격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0∼2001년 전국적인 ADSL붐을 타고 최대의 황금기를 누렸던 초고속인터넷 장비주들이 VDSL을 통해 황금기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WCDMA장비쪽도 올해를 기점으로 하반기부터 서서히 공급을 확대하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적확대가 예상되는 분야다. SK텔레콤과 KTF가 각각 3세대 이동전화법인인 SKIMT와 KT아이컴을 상반기안에 합병하고,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비동기식서비스를 개시할 계획이어서 관련 장비업체에는 더 없이 큰 호재다. 비동기식 서비스의 본격화는 곧바로 중계기, 안테나, 기지국장비 등의 수요확대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소규모 업종(스몰캡) 중 가장 눈에 띄는 실적 향상 행진을 펼쳤던 휴대폰부품 업종은 올해도 가장 유망한 테마의 하나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메이저 휴대폰메이커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올해도 계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출하량도 지난해에 비해 최대 30%까지 확대될 전망에 따른 것이다.
컬러 디스플레이, 카메라부착 등 휴대폰의 고가화, 다기능화가 촉진되면서 휴대폰 부품업체들도 고부가 부품을 중심으로 실적호조세를 지속해갈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인터넷 테마는 올해도 역시 정보기술(IT)주의 첨병역할을 담당하며 증시에서 가장 주목받는 행보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해말 4분기 실적호전을 모멘텀으로 주요 대형 인터넷업체들이 가파른 주가상승을 기록했듯이 수익성 개선이 확인되는 올해는 인터넷주의 실적테마 형성 최적기가 될 전망이다.
인터넷업종의 급성장과 함께 유무선 인터넷을 모두 아우르는 유비쿼터스 테마도 올해 증시를 뒤흔들 돌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비쿼터스테마에는 모바일 환경에서 자유롭게 게임이나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콘텐츠 및 솔루션중심의 모바일인터넷테마와 장비위주의 무선랜테마 등이 포함된다.
유비쿼터스 자체가 유무선통합을 의미하듯, 유무선 경계를 허문 갖가지 콘텐츠와 통신서비스가 일상을 둘러싼 통신환경의 기본환경으로 부상하면서, 관련 업종의 성장기 대감이 그 어느때보다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D램반도체의 가격하락세는 지속되고 있지만 반도체 장비주의 실적은 올해도 지속적인 개선흐름을 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를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서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LCD 등 파생장비분야의 시설투자는 올해부터 더욱 확대되는 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와 환경 관련주들도 새로운 생활문화 확산과 인류사적 관심을 바탕으로 긍정성을 높여갈 테마로 주목받고 있다. 게임, 영화를 주축으로 한 엔터테인먼트부분은 여전히 높은 부가가치성으로 인해 성장성을 크게 인정받고 있을 뿐 아니라, 주5일근무제의 확산으로 수요 또한 확대일로에 있기 때문이다.
환경관련주도 대기, 수질오염 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정부대응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올해 성장가능성을 크게 가진 유망업종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밖에도 연초부터 전국을 강타한 로또열풍을 타고 로또관련주들이 주목받았듯이, 올해도 단기적으로 1∼2주에서 장기적으로 수개월에 걸친 주가상승효과를 불러올 1, 2가지의 유망테마가 불거질 수 있을 것으로 증시 관계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전문가 진단-정의석 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장
1999년도의 폭발적인 성장세 이후 침체를 면치못하고 있는 IT산업의 부진이 올해로 4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물론 올해 후반부에 어느 정도의 회복이 기대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최대의 활황기였던 99년만큼의 업황은 아마도 다시는 만들어지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수요지체(Demand Lag)’에서 비롯된다.
흔히 주변문화의 급격한 변화가 있을 때 그러한 문화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문화지체(Cultural Lag)현상이라고 하는데, 작금의 IT산업에 있어서는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각종 첨단제품의 변화흐름을 소비자들의 요구(Needs)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수요지체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이 IT업황 부진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20세기 경제의 화두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바뀌는 소비자 요구의 변화였고 따라서 소비자 요구변화가 항상 기술의 변화를 초래하는 양상으로 일관됐다. 반면 21세기의 IT산업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소비자들의 요구변화를 훨씬 앞지르는 기술의 변혁이 초래하고 있는 수요의 공백이다.
디지털경제, 즉 IT경제 혁명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던 무어의 법칙이 이제는 수요지체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적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다. 널리 알려져 있는 ‘무어의 제1법칙과 제2법칙’ 중 제1법칙은 “가격을 고정시켰을 때, 마이크로칩의 복잡성(칩에 놓여지는 회로의 개수)이 약 18개월마다 두 배로 증대된다”는 것을 말한다. 인텔의 공동창업자이기도 한 무어는 컴퓨터 메모리 칩의 기술혁신 과정을 계속 지켜본 결과, 같은 회로소자를 집적할 수 있는 칩의 한 면 길이가 18개월의 주기로 30%씩 줄어드는 것을 관찰하게 됐던 것이다.
한 면의 길이가 30%씩 감소하니까 한 면의 길이가 1년 반전의 70%가 되고, 칩은 2차원의 사각형 형태를 띠고 있으므로 70%×70%를 하면 49%가 되어 결국 1년 반에 약 50%의 면적으로 같은 양의 회로소자를 칩에 집적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는 산업현장에서 3년마다 칩의 성능이 약 4배씩 향상되는 현상으로 실증되고 있다. 이처럼 IT산업의 기술과 그 기술을 활용한 제품은 빠른 속도로 진보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요구는 그러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함에 따라 결국 수요지체현상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시장에는 매번 새로운 성능으로 엄청나게 업그레이드된 IT제품들이 빠른 시간 내에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그 제품들을 사주어야할 소비자들은 그와 같이 빠른 속도로 성능이 업그레이드된 제품들의 사용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현상이 빈번해지고 있다.
무어의 제2법칙은 “무어의 제1법칙을 지키기 위해 반도체 공장의 비용이 점점 커져 반도체 산업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이와 같은 무어의 제1법칙과 제2법칙을 종합하면 작금의 IT산업이 당면하고 있는 현주소가 쉽게 그려지게 된다.
살아 남으려면 계속적인 대형투자가 불가피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요지체현상으로 인해 시장 전체의 파이(Pie)는 점차 쪼그라드는 국면, 그것이 바로 작금의 IT산업이 처해 있는 상황이다.
99년도의 활황이 다시는 기대하기 힘든 미증유의 활황이라고 보는 두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 당시 IT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밀레니엄 버그(Millenium Bug), 즉 Y2K문제 때문이었다. 초콜릿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하여 밸런타인데이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처럼 Y2K문제 역시 첨단기술제품들에 대한 수요창출을 위하여 지나치게 부풀려진 측면이 많았다.
이같은 논지는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귀결된다. 우선은 소비자들의 실질적인 요구변화와는 관계없이 단순히 기술 그 자체만을 앞세운 첨단IT 제품들의 경우, 결코 시장을 창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다음으로 우리증시에서 IT주들의 주가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점이다.
99년도와 2000년도 초반에 걸쳐 엄청난 시세를 분출하였던 대다수 IT관련주들의 경우 아마도 다시는 당시의 주가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그 해소과정에 있듯 그때 상황은 ‘기형적 거품’으로밖에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