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국내 IT산업에 ‘평판디스플레이(FPD)’가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가격폭락으로 위기에 선 반도체에 이어 지난해 최고 ‘효자노릇’을 했던 휴대폰마저 최근 주춤해진 상황에서 FPD산업이 수요강세에 힘입어 호황을 구가하는 등 IT산업의 ‘완충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업체별·모델별로 차이는 있으나 현재 LCD·PDP·OLED 등 FPD 시장 전반의 수급상황은 매우 빡빡하다. 17인치 모니터용 TFT LCD, 휴대폰 외부창용 OLED, 휴대폰 내부창용 UFB LCD 등 일부 품목은 아예 없어서 못팔 정도다.
전문가들은 “이라크전쟁 및 북핵문제로 인한 경제불안, 지속적인 세계 IT경기침체, 유가·환율·금리 불안 등 여러가지 외부 악재에도 불구하고 FPD산업이 호조를 띠는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 “이를 계기로 FPD산업이 ‘포스트 반도체’의 선두주자이자 국가 기반산업으로의 가능성을 확인해 주고 있다”고 강조한다.
◇배경=최근 FPD시장의 호전은 무엇보다 꾸준한 가격하락에 따른 수요증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큰 폭의 가격하락이 그동안 구매를 기다려 온 대기수요를 촉발한 것. 실제 TFT LCD의 경우 15인치 모니터용 모듈 기준으로 지난해 5월 260달러대에서 현재 170달러대까지 급락했다. 이에 따라 LCD업체들의 원가구조상 더이상은 떨어질 수 없는 ‘바닥권’이란 인식이 확산, 수요를 부채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PDP도 마찬가지. 지난해초까지 1000만원에 육박하던 42인치 PDP TV 가격이 지난해말 모듈 가격하락세에 힘입어 현재 600만원 안팍까지 하락, 수요급증세를 타고 있다. 특히 42인치 모듈 기준으로 2500달러가 바닥권으로 인식되면서 대기수요가 실수요로 이어지는 등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FPD호황은 전방산업의 기술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즉 디지털화·평판화·고급화·대형화 등 각종 영상기기 기술변화가 CRT 등 기존 디스플레이를 밀어내고 FPD를 유인하고 있는 것. 여기에 디스플레이가 영상 관련기기의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등장, FPD 수요증가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FPD는 반도체에 이은 또 하나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분야로서 디스플레이 강국 프리미엄을 톡톡히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CRT에 이어 TFT LCD부문에서 세계 시장을 평정했으며, PDP·STN LCD·OLED 등 FPD 전반에서 세계 최강을 다투고 있다. 때문에 관련업체들이 글로벌 마케팅을 전개하는 데 그만큼 유리하다.
◇전망=FPD는 기존 CRT 등 범용 디스플레이 대체효과와 신규수요를 동시에 창출할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전망이 밝다. 실제 LCD의 경우 주시장인 모니터시장 잠식률이 30%선에 불과, 앞으로 대체수요 창출 여지가 충분하다.
PDP 역시 제조원가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고, 기술적 아킬레스건이었던 효율과 품질 문제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어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삼성SDI·LG전자 등 주요 업체들은 이미 월평균 출하량이 1만장을 넘어섰으며, 이같은 추세라면 사상 최초의 손익분기점 돌파의 기준치인 월 2만장 돌파도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평가다.
OLED 시장은 더욱 기대가 크다. 주시장인 휴대폰 시장이 다소 침체를 보이고 있으나 외부창용의 경우 기존 TN/STN LCD 대체가 워낙 빠른데다 TFT LCD 대비 경쟁력이 높아 쇼티지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OLED 전문업체인 엘리아테크 박원석 사장은 “컬러폰 비중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고 OLED에 대한 사용자들의 반응이 좋아 올해는 사실상 풀컬러 OLED 시장 원년으로 기록될 만큼 수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FPD는 특히 영상을 표현하는 각종 전자·통신기기의 핵심 부품으로서 애플리케이션이 다양하다는 게 무엇보다 강점. LCD의 경우 이미 휴대폰에서부터 PDA, 카내비게이션시스템(CNS), 의료기기, 우주·항공, TV 및 모니터, 노트북 등 거의 모든 제품에 사용된다. OLED와 PDP 역시 향후 응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 그만큼 시장이 폭발력을 갖고 있음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그래도 변수는 있다. 최근의 수요강세가 가격하락에 기인한 것이란 점에서 가격이 변한다면 수요는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대폭적인 가격하락으로 FPD업계의 채산성은 현재 위험수위에 달해 있다. PDP의 경우 지나친 가격하락으로 업계의 순익분기점 돌파시점이 지연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LCD 역시 출하량 증가속도에 비해 매출 및 영업이익 증가율은 크게 못미치는 상황이다.
따라서 부득불 가격을 인상한다면 상승세가 위축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전문가들은 “FPD처럼 ‘대체제’를 갖고 있는 업종은 가격에 특히 민감하다”면서 “이미 지난해 상반기 TFT LCD 가격이 지나치게 상승, 수요가 급격히 위축된 전례가 있다”면서 FPD호황과 가격과의 상관관계를 강조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