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신 제이씨엔터테인먼트 사장 yskim@joycity.com
어떤 산업이든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성장전략이 필요하다. 성장전략의 기본은 기존 유통경로, 시장 및 상품을 현재의 상태에서 획기적으로 바꾸어 봄으로써 시작된다. 그 변화가 성공할 때 얻어지는 대가가 성장이다. 변화없이는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한국게임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이 성장전략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해법이 나온다. 한국의 게임산업, 특히 온라인게임 산업의 경우 지난 97년의 IMF 경제 위기를 시발점으로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통계수치는 없지만 97년 당시 온라인게임 개발사들이 연말 망년회자리에서 농담삼아 이야기했던 동시접속자를 돌이켜 볼 때 3∼4년간 거의 매년 10배의 성장을 해 온 것 같다.
이 무렵 게임산업에서의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그때까지 ‘게임’이라고 하면 PC로 구동하면서 1인이 PC를 상대로 겨루는 것이 게임이었다. 물론 일본 게임기도 보급이 됐지만 즐기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96년에 한국 최초의 온라인게임(MMOG)이 발표되면서 97년 무렵에는 4∼5개의 온라인게임이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이들 온라인게임은 기존의 게임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게임의 재미나 그래픽은 PC게임이나 비디오게임보다는 많이 뒤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인터넷회선을 통한 ‘다운로드’라는 유통방식은 어느 누구도, 어느 나라에서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것이었고 게임공급자(게임개발사)와 게임소비자를 연결하는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게임공급자는 소비자들에게 게임이 직접 전달되면서 유통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불법복제의 위험과 공포에서 해방됐다. 소비자도 원하는 게임의 내용을 신속하게 공급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패치를 즉각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당시 급속하게 늘어나던 PC방과 초고속 인터넷망이 보급되면서 온라인게임 산업의 성장 견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공급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유통의 변화가 더욱 본질적인 성장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지난해 게임업계의 최대의 화제는 온라인게임심의제였다. 이 심의제도를 계기로 몇몇 게임 개발사들은 기존의 시장을 구분해 성인 시장을 창출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 성공을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19세 이상의 성인들의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다. 성인들도 성인들만이 모여서 그들만의 품위를 지키며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것이다. 이것도 시장을 구분해 기존의 성장성을 지속시키려고 하는 변화, 곧 성장 전략의 하나가 아닌가.
한국 온라인게임 개발자들이라면 게임 흥행 성공을 위한 ‘비법’이라고 믿고 있는 세가지 법칙이 있다. 첫째, 소재는 중세팬터지여야 한다. 둘째, 인터페이스는 대한민국 표준품새(오른손 검지와 중지만으로 모든 게임조작이 가능)여야 한다. 셋째, 게임의 중독성을 확실히 하기 위해 아이템의 현금 거래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아마 국내시장에서 히트를 친 온라인게임을 분석해 보고 많은 개발사들이 이런 점을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 외국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게임은 그게 그거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소재는 중세팬터지에, 장르는 무조건 롤플레잉게임, 게임내용은 아이템 중심으로 소위 현거래가 용이한 구조로 짜여져 있다. 그래서 개발사와 게임 제목만이 다를 뿐 같은 게임이라는 것이다.
물론 성공의 사례를 따라 게임을 만드는 것이 게임 개발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20여명에서 30여명이 2년 이상을 투자하는 대작 온라인게임에서 새로운 시도는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는 이러한 새로운 시도 없이는 우리나라의 게임산업 전체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소재도 바꾸고, 인터페이스도 바꾸고, 장르도 바꾸고 개발사는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게임 소비자들이 천편일률적인 게임은 ‘이제 그만’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위험을 무릅쓰는 새로운 시도가 시장에서 인정 받을 때 우리나라의 게임산업이 계속 성장할 수 있고 해외시장에서 제대로 자웅을 겨뤄 볼 수 있는 한국 온라인게임이 출현할 수 있다.
‘누가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에서 말하듯 이제 줄어드는 치즈의 양을 파악하고 새로운 치즈를 찾으러 갈 지혜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