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징가Z와 태권V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만화방에서 하루종일 뒹구는 동네 꼬마들의 입씨름에서 나올 법한 얘기다. 한국의 30대 남성이라면 어린시절 만화 속 로봇주인공을 주제로 꽤 진지한 논쟁을 벌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로봇이 세상에서 제일 쎄다고 믿고 싶은 동심 속에서 로켓주먹과 광선빔의 대결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논쟁거리였다.
돌이켜보면 과거 70년대 애니메이션계는 싸우고 부수는 거대 로봇물의 전성시대였다. 그 중에서 72년 일본에서 발표된 마징가Z는 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은 거대 로봇캐릭터의 원조로 인정받고 있다. 마징가는 이전에 나왔던 로봇만화와는 차원이 다른 파괴적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어린이들에게 선사했다. 특히 조종사가 로봇의 머리부분에 근사하게 도킹한 뒤 로봇과 일심동체가 되는 그 웅장한 합체장면은 매일 저녁 TV에서 반복되는 어린이 종교의식이나 다름없었다.
마징가 시리즈는 한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아직도 반일감정이 강한 한국에서 일본만화에 열광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기성세대에게 그다지 탐탁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강한 로봇영웅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때 김청기 감독이 만든 태권V가 76년 혜성처럼 등장했다.
태권도란 국기로 무장한 태권V는 한국적 카리스마를 지닌 최초의 만화영웅으로 떠올랐고 연이은 시리즈 성공에 힘입어 한국만화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작으로 떠올랐다. 한국로봇의 자존심 태권V와 일본 마징가의 대결은 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이후 거대 로봇물이 점차 쇠퇴하면서 만화 속에서도 단 한번도 성사되지 못했다.
그런데 마징가Z와 태권V가 실제로 만나 역사적인 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 민간 로봇단체는 일본에서 인기리에 자리잡고 있는 이족로봇격투대회를 한국과 일본, 중국팀이 참여하는 국제대회로 격상시켜 오는 5월 서울에서 제1회 아시아 로보원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로보원대회는 이족보행로봇끼리 상대편 로봇을 쓰러뜨리는 격투경기인데 이달 초 도쿄에서 열린 제3회 일본 로보원대회에선 그 유명한 ‘기운센 천하장사∼’ 주제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마징가Z로 분장한 이족보행로봇이 걸어나와 관객들의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마징가 로봇은 오는 5월 서울대회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질세라 한 국내 대학팀은 태권V로 분장시킨 이족보행로봇을 출전시키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태권V와 마징가 로봇의 대결이 성사된다면 한국이 취약한 이족보행 로봇기술 발전에 훌륭한 자극제로 작용할 것이다.
최근 국내의 한 카메라업체는 태권V(국산카메라)가 마징가(일본카메라)를 누른다는 광고 카피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한국인의 자부심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는 태권V와 김청기 감독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