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디지털사회와 아바타

◆이현우 80080컴퍼니 사장 happy@80080.com

 

 1999년 인터넷 붐의 중심에서 3D 아바타 채팅을 개발했다. 당시 일하던 부서는 신기술사업부로 불리며, 각 부서에서 차출된 인력들이 모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당시 아바타는 그 발음이 너무 생소해 회의 때마다 ‘아바타’를 이야기할 때면 어김없이 어색했다.

 하지만 이 아바타는 2002년 닷컴의 거품을 변호하는 결정적인 증거였고 수익을 갈망하는 닷컴의 오아시스였으며 닷컴의 재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닷컴의 필수품이 돼 그 이름이 인터넷 이용자들에게는 라디오만큼이나 익숙한 외래어가 됐다.

 얼마 전 제휴문제로 외국 기업에 아바타 비즈니스를 설명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쪽에서 요청한 자료는 철저히 오프라인 상품에 맞춰져 있었기에 나는 이런 양식으로는 우리의 비즈니스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절차여서 마땅히 다른 양식이 없으니 형식적으로라도 내용을 채워주기를 요청했고 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경직돼 있는 그들의 형식주의를 못내 못마땅해하며 다시 그 양식을 펼쳐보았다.

 제작하는 상품·판매처·유통방식·보유기술·품질관리·원가·소매가·생산량·생산방식 등…. 처음에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을 것 같던 항목들이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인터넷이 만들어낸 새로운 패러다임, 기존의 어떠한 틀로도 설명할 수 없는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인양 떠들어대던 것이 산업사회 이후 우리가 지금까지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했던 수많은 재화 중 하나였던 것이다.

 분명히 그것은 상품이었고 어느 곳엔가 진열되고 판매되며 유통됐다. 원가가 있고 손익분기점도 있으며 인기 있는 상품과 품질이 우수한 상품도 있었다. 기술개발도 있고 그에 따른 보유기술도 있으며 품질관리도 하고 있었다. 다만 손으로 상품을 만질 수 없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을 디지털이라 부르며 이에 관련돼 많은 소비를 하고 있다. 아날로그적인 것을 디지털화하는 상품, 그것을 저장하고 전달하며 출력하는 상품 등을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해오고 있다.

 산업사회 이후 소비요구 측면에서의 소비패턴은 ‘생존을 위한 소비’에서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소비’로 변화해왔다. 오프라인 상품만을 본다면 이제는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위한 소비가 정착된 단계까지 와있다.

 디지털 상품에서도 인간은 이런 소비패턴을 빠르게 적용시켜가고 있다. 현대사회의 연장선상에서 디지털 사회라는 패러다임만 바뀌었을 뿐 그 속에서의 소비패턴 역시 동일한 사이클을 가지고 성장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메일이나 자료의 저장공간을 늘리고, 전송속도를 높이기 위한 소비가 초기단계라면 이제는 자신을 표현하는 매개체를 설정하고 자신의 홈페이지를 꾸미기 위해 스킨을 구입하거나 디지털 이미지의 선물을 교환하는 보다 진보적인 소비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디지털사회 소비패턴의 질적전이를 가져온 시발점이 아바타였다.

 현대사회의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성숙이 생활의 만족감을 중시하는 소비패턴을 가져왔다면 디지털 사회에서도 디지털의 기반이 확장되고 온라인의 사회성이 성숙해감에 따라 ‘디지털 아이템’의 유통이 가치 있는 소비패턴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그 시기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올 것이다. 우리는 조만간 디지털 아이템을 구입할 때 특정 브랜드만 고집하는 사람들을 쉽게 보게 될 것이며 특정 디지털 아이템에 대한 마니아적 집착을 가진 집단이 목소리를 높이고 명품 디지털 아이템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대두되는 날을 머지않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