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국 부시 행정부가 상속세 폐지법을 확정하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상속세 폐지의 가장 큰 수혜자일 법한 일부 재벌들이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죠. 우리나라 갑부들 같으면 어떠했을까요.”
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빌 게이츠 MS회장의 부친 윌리엄 게이츠 2세를 비롯해 세계금융의 황제 조지 소로스, 언론재벌 테드 터너, 주식투자가 워렌 버핏은 물론 록펠러가, 루스벨트가 등과 같은 전통 재벌가들까지 나서 상속세 폐지법 반대 청원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부는 세습이 아닌 ‘재분배’를 통해 더욱 값있어 진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 관계자의 말은 계속된다. “참여정부가 상속세 포괄주의 도입 의지를 밝히자 무기명채권의 가격이 폭등하고 있습니다. 무기명채권으로 상속하면 자금출처조사를 받지 않아 상속세를 안내도 돼니 너도나도 무기명채권을 사려는 것이죠. 일각에서는 신정부를 상대로 ‘사회주의’까지 운운하며 강력히 항의하고 있습니다. 참 씁쓸한 대조 아닙니까.”
노무현 대통령과 인수위는 첫 국정과제 토론회의 주제를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으로 삼고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과 금융지배 등 ‘반칙적’ 요소에 대해서는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공정성’ 강조한 재벌·금융정책=경제분야 국정비전과 과제중 하나인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은 그간 우리 경제에서 지나치게 편향돼 있던 힘의 불균형을 시정, 형평성을 높이면서 공정한 ‘룰’을 확립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참여정부의 시장정책은 재벌의 불건전한 지배구조와 부실한 양적팽창을 규제하고 그 수단인 재벌-금융의 연계고리를 끊어내는 것을 한국경제의 안정적 장기성장과 질적 도약의 핵심요소로 설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재벌금융사의 계열분리청구와 자기계열보유주식 의결권행사제한 등 직접규제정책과 함께 △금융사 대주주 자격유지제, 여신한도축소 △비상장 금융사 감독강화 △공정위 사법경찰권 부여 등 감시체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경제개혁, 디지털 경제에 부합돼야=참여정부의 경제개혁이 ‘힘의 균형’에 집중된 나머지 재벌에 대한 일방적 재제 조치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특히 디지털 경제체계에 맞는 정책의 유연성이 갖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자금융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다수 인터넷 뱅킹은 기업이 아닌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소매금융 서비스를 주로 시행하고 있는데도 불구, 현행 은행법상 지배구조 규정에 묶여 재벌 등 일선 기업의 인터넷 뱅킹사업 참여가 사실상 막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새 정부는 특히 재벌의 은행경영 참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은 커녕, 은행 지배구조의 제한이 보다 강화될 조짐마저 있다”고 우려했다.
이형승 브이뱅크컨설팅 사장은 “기업의 경제활동을 무조건 막기 보다는 인터넷 뱅킹 등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유연한 정책적 배려를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