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구난체계법, 국회 파행으로 표류 우려

 “긴급상황! 중앙로역 화재 발생. 상행선 전동차에 탑승한 승객 여러분은 차량이 역에 진입하는 즉시 출입문옆 의자를 들어내고 코크를 돌려 문을 열고 질서있게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소방본부입니다.”

 만약 대구지하철 1호선 1080호 차량 내에 있던 시민들의 이동전화단말기에 때맞춰 이런 문자메시지가 보내졌다면 수백명의 희생자를 낸 지난 2월 18일의 비극은 지금보다 훨씬 줄었을 것이다.

 소방본부 등이 재해구역내 시민들에게 이동전화로 위험을 미리 경고하는 이 가상 시나리오가 실제로 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지만 입안 당시부터 국회의 거듭된 파행으로 조기 입법이 불투명한 상황에 봉착했다. 전문가들은 대구 참사와 같은 대형 인재가 발생한 위기 상황에서 국회가 조속히 입법을 추진하기는 커녕 안일한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며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또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급한대로 정부가 사회안전망 부실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어처구니없는 불행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재난관리시스템을 전면 점검하고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지난 10월 ‘위치정보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하고 올 초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었으나 국회 의사 일정이 늦춰짐에 따라 당장 법안을 제출하더라도 ‘4월 국회 통과, 7월 발효’ 목표가 빗나갈 공산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법률(안)에는 ‘공공구조기관은 개인위치정보주체가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응급구조를 요청한 경우 위치정보업자에게 당해 개인위치정보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고, 개인위치정보주체의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위험지역내에 위치한 개인위치정보주체에게 생명 또는 신체의 위험을 경보하도록 위치정보업자에게 요청할 수 있다(안 제24조)’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가칭 ‘e119’로 불리우는 이 조항은 특히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해당 지역에 위치한 시민들에게 사전에 위험을 경고함으로써 대규모 인명 손실을 줄인다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다.

 미국에서도 9·11테러를 계기로 e911제도를 도입, 이동전화사업자가 공공구조기관에 가입자의 위치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고 있으며 일본과 유럽 등에서도 유사한 제도를 추진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이동전화를 응급구난에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 역시 e119를 비롯한 위치정보 보호 및 이용법을 마련해 재난 발생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등 전국적인 위기관리시스템을 만들 계획이었으나 현재로서는 입법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 전문가는 “대형 인재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재빨리 대처할 수 있는 총체적인 시스템이 없다는 데 있다”며 “어처구니없는 인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입법절차를 거쳐 재난관리체계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