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너제이(미국)=산업기술부·손재권기자 gjack@etnews.co.kr
미국에서 최근 가장 많이 회자되는 주제는 단연 이라크와의 전쟁이다. 부시 정부는 TV를 통해 전쟁의 당위성 대해 설명하고 있고 CNN·FOX뉴스·MSNBC 등 유력 뉴스채널은 100여명의 특파원을 이라크 및 중동에 파견, 전쟁중계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 뉴스채널은 전쟁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이라크전쟁 카운트다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에서 반전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미디어에 나타난 미국은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다. 오히려 하루 빨리 전쟁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이자 미국에서도 가장 개방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기자가 실리콘밸리에 도착한 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베트남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군중이 모인 반전시위가 열려 지역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실리콘밸리의 심장부 새너제이에서도 3년째 계속 되고 있는 IT경기 침체로 지역경제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들린다. 현지 신문 ‘머큐리’는 최근 무너진 기업들로 인해 실업난이 심각하며, 특히 여성이 타격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특집으로 다뤘다. 실제로 곳곳에 빈 집과 빈 사무실이 보이고, 심지어는 짓다가 만 건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현지에서 만난 한 지역전문가는 “집값이 2000년에 비해 절반 가까이 떨어졌고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며 90년대 화려한 조명을 받던 ‘IT신화’가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전쟁 발발에 따른 후폭풍도 우려하는 듯했다. 미국 반도체협회(SIA) 도우 안드레이 수석연구원은 “전쟁으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과 예산집행 지연으로 IT경기가 맥을 못추고 있다”고 말했다.
혹자는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조기에 마친 후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며 본격적인 경기상승을 주도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 느낀 현장 분위기는 그 같은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마디로 실리콘밸리의 첨단기업들은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전쟁과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블랙홀 같은 전쟁에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