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IT 강국과 대형참사

◆박성주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sjpark@kgsm.kaist.ac.kr

 

 대형 참사가 또 터졌다. 대구 지하철사고로 가족과 친지를 잃은 사람들의 통곡소리는 모든 국민의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 참사 그리고 인터넷대란 때와 마찬가지로 빨리빨리, 안전불감증, 한탕주의, 무책임, 위기관리의식 부재 등이 빚은 인재다. 우리가 자랑하던 무선통신망은 고작 사망자의 마지막 인사와 위치확인을 위해 활용되고 있으니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대국이라는 말도 무색해진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지나간 대형 참사들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순간적인 구조물의 붕괴와 달리 이번에는 여러 차례나 사고의 대형화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실수가 이어진 시스템적인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도대체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인가. 보다 근원적으로는 범죄를 일으킬 동인을 없앨 수 있도록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와 지원 등 사회 복지망이 중요하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러한 범행이 저질러졌다 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번 참사의 경우를 보면 방화가 일어났더라도 전동차 내부가 선진국과 같이 불연재로 돼 있었다면, 전동차 내에 스프링쿨러나 소화장치가 작동됐다면, 한 전동차에서 다른 전동차로 불이 번지지 않도록 대비가 돼 있었다면, 비상시 쉽게 문을 열 수 있었다면, 마스터 키를 뽑아도 문을 열 수 있도록 전동차 설계가 돼 있었다면, 지하철 역내에 충분한 가스배출 설비가 돼 있었다면, 비상시 대피할 수 있도록 비상 전력과 비상등이 제대로 켜졌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IT 강국으로서 가장 뼈아픈 것은 비상시에 대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설치해 놓은 지하철 정보통신의 두뇌인 종합사령실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한 점이다. 각종 센서와 CCTV, 컴퓨터를 설치해 놓았으나 잦은 오작동으로 무시하고 방치하고 있었다니 겉치레 정보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정보사회에서 정확한 정보는 집을 지을 때의 벽돌과 같이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다. 오류정보로는 튼튼한 정보화의 집이 건설될 수 없다.

 원천적인 오류가 없다 하더라도 모든 정보를 기계에만 의존해 생성할 수는 없다. 아직도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부분이 훨씬 더 많으며 이 때문에 인간과 기계의 인터페이스가 중요하다. 인간은 복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음과 동시에 오류의 가능성도 항상 가지고 있다. 아무리 성실한 근무자라 하더라도 순간적인 실수는 할 수 있으며 이때 오류를 줄일 수 있도록 설계가 돼 있지 않다면 제대로 된 시스템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고속도로상에서 사고가 났을 때 패턴인식으로 이를 인지해 뒤에 오는 차들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을 실용화하고 있다. CCTV상의 영상에서도 사람의 눈에만 의존하기보다 보완적으로 비정상적인 패턴을 인식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면 오류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정확한 정보와 좋은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다면 다음으로는 적절한 의사결정 단계가 필요하다. 불이 나고 비상사태라는 것을 인지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의사결정을 못한다면 이전의 모든 노력도 수포로 돌아간다. 이 단계에서도 인공지능에 의한 의사결정 지원시스템이 도움을 줄 수는 있겠으나 이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이 문제에 이르러서 창의성과 문제해결 중심이 아닌 암기식, 지령 수행식의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위급한 상황에서 지령만을 기다리고 더욱이 잘못된 지령을 그대로 수행할 수 있었을까.

 이번 참사를 후진국형 사고라고 하나, 바로 이런 사고가 나는 국가가 후진국인 것이다. 이런 참사의 배후에 ‘빨리빨리’와 ‘대충대충’ 그리고 ‘싸게싸게’가 있는 한 우리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이제는 겉치레에서 벗어나 안전과 질의 사회를 구축해야 할 때며 정보통신도 이를 촉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돌아가신 영혼을 위해서나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 현재의 우리에게 주어진 절실한 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