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TV의 종주국 일본의 위치를 사수하라.”
지난 20여년간 세계 TV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 온 소니, 샤프, 히타치, 파이어니어, NEC 등 일본업체들이 최근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초대형 벽걸이(PDP)TV를 선보이며 한껏 위용을 뽐냈던 일본기업들이 이제는 한국업체들의 숨가쁜 추격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아날로그 TV시장에서 세계시장을 주름잡았던 소니, 필립스의 명성도 예전같지 않다. 이들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한국의 디지털TV 제조업체들이 강해져도 너무나 강해졌기 때문이다.
디지털TV시장이 브라운관 컬러TV에서 프로젝션TV를 거쳐 PDP TV와 LCD TV쪽으로 급속히 이행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소리없이 준비해온 한국업체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디지털TV업체들은 이제 기술력, 브랜드파워에서, 그리고 글로벌 마케팅 노력에서 결코 이전 컬러TV의 대명사인 예전 소니나 필립스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프로젝션TV와 함께 가장 널리 인기를 누리고 있는 벽걸이 TV를 생산할 수 있는 6대업체가 한국과 일본업체뿐이라는 점은 한국 디지털TV의 위상을 잘 말해준다.
게다가 컴퓨터모니터에 사용되는 TFT LCD모니터를 TV로 만든 LCD TV시장에서도 LG필립스LCD가 세계 최고의 생산업체다. LCD TV에서도 한국이 세계 1위인 일본 샤프를 위협하면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새 한국의 디지털TV산업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일본과 대등한 수준에까지 도달해 있다.
이미 2년전 산자부와 LG전자·삼성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가 공동으로 개발한 양방향 인터랙티브 TV 역시 세계적인 기술개발 성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의 국가에서 차세대 기술의 결정체인 디지털TV분야에서 선발주자가 됐지만 세계 최고의 디지털TV기술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코 자만할 수 없다. 일본의 소니가 트리니트론으로 세계 아날로그TV를 주도했지만 차세대 PDP TV, LCD TV에 대한 투자의 기회를 놓치고 유기EL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느새 세계 최고의 디지털TV기술국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의 지상과제는 이제 현재의 기술개발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차세대 디스플레이기술·LSI기술에 집중해야 하는 등의 지속적 과제를 남겨놓고 있다.
지난해 진대제 신임 정통장관이 한 세미나에서 “일본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돼 엔지니어의 평균 연령이 우리나라보다 10년 이상 높아졌고 결국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고 지적한 것처럼 인력양성은 결코 간과할 부분이 아니다. 특히 중국이 차세대 핵심산업으로 꼽히는 디지털TV분야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어 결코 우리나라의 지위는 안정된 점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중국의 창훙, 하이얼, 콩카 등의 업체는 이미 프로젝션TV를 개발해 출시하고 있고 최대 특수시점인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한단계 높은 PDP TV모듈생산을 노리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르면 올 하반기쯤 한일간 경쟁에서 뒤쳐지는 업체가 나오면서 투자여력에 따른 재편작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까지 진단하고 있다. 세계 첨단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전쟁터의 일선에는 디지털TV시장 주도권을 확보를 위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소리없는 전쟁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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