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취재차 바쁘게 어딜 가느라 택시에 올라탔습니다. 바쁜 마음에 자꾸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니까 택시 운전사가 한마디 건냅니다. “휴대폰이 좋아 보이네요. 얼마나 해요.” 말은 이어졌다.
“요즘은 휴대폰으로 사진도 찍더군요. 글쎄 얼마전에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아들놈이 겨울방학동안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마련한 돈으로 휴대폰을 샀는데 카메라가 달려 있더라구요. 50만원도 넘게 줬대요. 그런데 어제 수영장에 갔다가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집에 와서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더라구요. 휴대폰을 잃어버린 후로는 애가 친구들도 잘 안만나고 그래요. 휴대폰이 없으니까 창피하다는거죠. 그래서 하나 사줄려구요.”
청소년들이 입학·졸업·생일 때 가장 받고 싶어하는 선물은 휴대폰입니다. 교실에서는 늘 최신 휴대폰이 화제고 카메라폰이니 캠코더폰 같은 다양한 신제품은 청소년들의 라이프 스타일마저 바꿔 놓고 있습니다.
패션과 유행에 민감한 10대들에게 휴대폰은 커뮤니케이션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휴대폰은 자기를 표출하는 또 하나의 나로 여기기 때문이죠. 휴대폰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조금이라도 유행에 뒤처지면 자신의 또래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마저 갖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밥은 굶더라도 휴대폰만은 최신으로 장만해야 직성이 풀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휴대폰 교체속도도 빠릅니다. 지난해 국내 휴대폰 시장은 1600만대에 육박했습니다. 가입자의 절반이 넘는 사람이 휴대폰을 교체한 것이죠. 10·20대의 비율이 60%를 넘는다고 합니다. 10·20대가 900만대 가량을 산 셈이죠.
특히 1분기에 휴대폰 판매량이 급증합니다. 졸업·입학에 휴대폰을 많이 선물해 그렇겠지만 겨울방학을 이용해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휴대폰을 마련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휴대폰이 아르바이트의 세태마저 바꾸고 있는거죠.
휴대폰 마련을 위해 패스트푸드점이나 주요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도 상당수라고 합니다. 오죽하면 “30·40대는 카드빚 막느라고 아르바이트하고 10·20대는 휴대폰 사려고 아르바이트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돕니다.
70년대 학비마련을 위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아르바이트에 나섰던 고학생들이 지금의 세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ij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