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피아]트러스트

 ◇트러스트/프랜시스 후쿠야마 저/한국경제신문사 펴냄

 최근 세계적인 장수기업들의 성공요인이 기업 내외부에 구축돼 있는 폭넓은 신뢰인 것으로 밝혀지자 우리나라의 주요 기업에도 이에 대한 벤치마킹과 실천 방법론 개발이 한창이다.

 신뢰를 국가와 기업 경쟁력의 원천으로 주목한 대표적인 학자는 일본계 미국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다. 그는 ‘트러스트’에서 각 사회가 지니고 있는 신뢰의 정도가 그 사회의 경제적 특징을 결정지을 뿐만 아니라 경제발전의 관건이 된다고 설파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법률, 계약, 경제적 합리성 이외에 호혜성, 도덕률, 공동체에 대한 의무, 신뢰 등이 가미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뢰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집단인 가족에서 구현될 수 있고, 가장 큰 집단인 국가에서 발현될 수도 있으며, 그 사이에 있는 각종 사회집단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서든 신뢰가 가장 강하게 유지되고 있고,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곳은 가족이다. 대다수 기업이 가족기업 형태로 시작되는 연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후쿠야마의 본질적 관심은 신뢰관계가 가족이나 혈연을 넘어서 전체 사회의 구성원들에게까지 폭넓게 확산되느냐 여부다. 이것이 가능한 사회에서는 가족기업이 전문적인 경영인에 의해 영위되는 근대적인 대기업으로 신속하게 발전할 수 있다. 반면 신뢰관계가 가족이나 혈연 내로 제한돼 있는 사회에서는 전문경영체제가 쉽게 정착될 수 없고 가족기업이 대기업으로 발전하기도 어렵다.

 저자는 주요 산업국가의 실례를 들어 자신의 이 같은 주장이 타당한 것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일본이나 독일·미국과 같은 국가는 가족과 국가의 중간지대에 강력한 사회집단들을 자발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 중국·한국·이탈리아·프랑스와 같은 저신뢰 사회에서는 가족만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자발적 결사체의 형성이 미약했으며 비친족 간에 서로 신뢰하기를 꺼리는 습성이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신뢰의 관점에서 본 한국사회다. 한국사회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형성, 산업의 집중화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일견 고신뢰 사회인 일본과 유사하다. 하지만 그 내면을 좀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한국은 다분히 저신뢰 사회인 중국에 가깝다.

 후쿠야마가 이 책에서 고신뢰 혹은 저신뢰의 실례로 들고 있는 사회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문화적 장점과 효율적인 성장전략으로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들이다. 그런 점에서 가족 구성원간 신뢰에 기반한 ‘가족기업 전략’과 고도의 자발적 사회성에 입각한 ‘고신뢰 사회 전략’은 서로 배타적이거나 배제적인 개념이 아니라 성공적인 산업화를 위한 ‘기능적 등가물’이 아닐까.

 <김종길 덕성여대 교수 way21@duk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