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T관련 협회나 단체에서는 보기 드문 ‘참신한’ 회장선출 방식으로 시선을 모은 곳이 있다. 올해로 창립 15주년을 맞는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이하 협회)는 지난 2월 신임회장을 추대하면서 협회 역사 이래 처음으로 ‘경선’이라는 이변을 경험했다. ‘추대’라는 형식으로 주변의 권유에 못이겨 협·단체장을 맡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받아들여지는 업계에서 이같은 반란은 남다른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회장단 회의 경선결과 만장일치로 8대 신임회장으로 선출된 김선배(53) 회장의 어깨는 그만큼 무거울 수밖에 없다. 얼굴마담으로 폄하되기 일쑤인 기존 협회장의 이미지를 타파하고 ‘심부름꾼’으로서 고생을 자처하겠노라고 공약을 내세웠던 김 회장이기에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현대정보기술이라는 대형 시스템통합(SI) 업체를 꾸려나가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짧은 김 회장이 협회 장직에 도전장을 던진 이유는 분명하다. 협회의 개혁이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외형적으로는 현재 국내 1200개 소프트웨어 관련 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는 명실공히 SW 민간대표단체다. 하지만 최근 그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덩치는 커졌지만 회원사들의 권익신장이라는 협회 설립 본연의 취지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이같은 협회의 위기를 주변인으로서 질타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협회의 중심에서 정면으로 돌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최근 정부의 강력한 육성책에 힘입어 국내 소프트웨어산업도 국가 전략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중대 기로에 서 있습니다. 지금 협회는 젊고 패기 넘치는 추진력을 그 어느 때보다 원하고 있습니다.”
취임 일성에서 밝힌 것처럼 김 회장은 우선 협회의 시급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해 나가는 작업을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고 있다.
취임 직후 협회 전직원 37명을 일일이 만나 만 하루를 할애해 일대일 미팅을 가진 것은 이같은 그의 의지를 입증해준 단적인 사례다.
김 회장은 “직원들과 대화를 나눠본 결과 예상했던 것보다 협회 내부의 문제점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협회는 물론 소프트웨어 산업계의 발전에 도움을 줄 만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며 깨알 같은 메모가 적힌 수첩을 펼쳐보였다.
그는 이같은 직원들의 소중한 의견들을 바탕으로 올해 SI 입찰제도의 합리적 개선, 내수활성화, 해외시장 진출이라는 세가지 중점 과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 마련을 고심중이다.
무엇보다도 김 회장은 올해 최우선 과제로 ‘최저가 하한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포부를 강력히 밝혔다. 기술보다는 가격에 의해 수주업체가 결정되는 현 입찰제도의 고질적인 병폐를 뜯어고쳐 보겠다는 것.
그는 “발주처 측에서 민간업체 단위의 협의체를 구성해 가격경쟁을 최소화할 것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자율적인 가격조정엔 분명 한계가 있다”며 “최저가 하한제도를 마련해 입찰시 적용하고 사후감리제도 등을 통한 감시도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업체의 해외진출을 위한 민간기업 대표 창구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도 빼놓을 수 없는 숙제다.
“민간기업의 해외진출을 위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과 함께 충실히 수행해 갈 것입니다. 특히 중소기업이 실질적으로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고자 합니다.”
SI업체뿐 아니라 협회에서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패키지 소프트웨어 업체들에게도 눈을 돌릴 생각이다. 정부가 각종 입찰시 무조건 외산 솔루션을 선호하는 관행을 개선하고 국내 패키지 전문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육성할 수 있도록 협회가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김 회장의 생각이다.
이처럼 올해 협회의 중점 사업계획을 명확히 피력하는 김 회장이지만 협회 조직의 쇄신에 대해서는 다소 신중하게 운을 띄운다. 이미 회장 경선 과정에서도 한 차례 경험했듯이 다수 회원사가 모인 단체이다 보니 파격적인 개혁을 단행하는 일이 순조롭지만은 않은 터이다.
김 회장은 신정부가 인수위원회 활동을 통해 정권교체에 따르는 부작용을 최소화한 것처럼 협회 개혁을 위한 TFT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TFT는 협회 직원, 임원 등이 머리를 맞대고 협회 내부 조직개선 방향을 잡아나가는 브레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김 회장은 귀띔한다.
매출 규모대로 순서를 매겨 이사사를 50개씩이나 거느리고 있는 비효율적인 협회 조직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급진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내부개혁에는 한 템포 늦추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아직 시작단계인 만큼 충분히 고민하고 신중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지난 2000년 현대정보기술 경영지원본부장으로서 특유의 추진력을 앞세워 회사의 기업공개를 성공적으로 마친 김 회장이지만 협회 내부의 환골탈태에는 한 번 더 생각하는 자세로 임하겠다는 것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다섯번이나 관람했을 정도로 예술에 대한 애정이 깊은 김 회장은 이같은 섬세함으로 개혁을 조화시켜 나가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한다.
SW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적인 지원이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얼마나 이른 시일 내에 개혁이라는 성공 스토리를 창조해낼 수 있을지는 이제 김 회장의 몫으로 남게 됐다.
*약력
△50년 서울 출생 △69년 보성고 졸 △73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 △75년 한국외환은행 입사 △78년 현대건설 기획관리실,국제금융경리 차장 △86년 현대증권 국제금융부장, 뉴욕사무소장 △91년 미 뉴욕대 경영대학원 졸(MBA) △93년 현대정보기술 관리본부 재정담당 이사대우 △96년 현대정보기술 경영기획실장 이사 △97년 현대정보기술 경영기획실장 겸 금융사업본부장 △99년 현대정보기술 경영지원본부장 상무 △2000년 현대정보기술 최고운영책임(COO) 전무 △2001년 현대정보기술 전무 대표이사 △2001년∼현재 한국경영정보학회 산학부회장, 한국전자거래협회/기술협회 부회장 △2002년 한국소프트웨어컴포넌트컨소시엄 부회장 △2002년∼현재 현대정보기술 사장 대표이사, 한국네트워크연구조합 이사장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