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국내 업체의 독무대였던 주요 디지털 셋톱박스 시장에 ‘중국 경보령’이 떨어졌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셋톱박스 시장으로 부상한 중동과 유럽지역에서 최근 몇년새 중국산 점유율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산 제품은 낮은 인건비를 기반으로 한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중동과 유럽에 무차별 유통되면서 국내 업체의 주력 수출시장인 이 지역을 급속히 잠식해가고 있다.
국내 업체들의 셋톱박스 수출은 고가와 저가 제품 구성비가 60대40을 꾸준히 유지해 왔지만 업계는 위성방송 셋톱박스 모델 중 최하위 모델(로엔드)인 무료방송수신(FTA)형에서 중국 제품에 전체 시장의 80% 이상을 잠식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일부 중국 업체는 최근 저급 모델에 이어 고급형 모델 중 하나인 수신제한장치(CAS) 인증형 제품을 선보여 고급 모델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임화섭 가온미디어 사장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미했던 중국 업체의 시장 점유율이 최근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며 “이미 중동 시장에서 FTA 모델의 경우 중국산이 거의 휩쓸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 업체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중동 시장에서 FTA 모델의 소비자 가격은 2001년에 대당 150달러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중국산 제품 공세로 절반 수준에도 못미치는 60달러대로 추락했다.
휴맥스의 중동 현지법인인 휴맥스걸프의 한만수 사장도 “유럽이나 중동 시장에서 커먼인터페이스(CI)나 수신제한장치 방식 등 고급형 중국 제품의 점유율은 미미한 상황이지만 저급 모델은 국내 업체를 이미 앞질러 지금은 70∼80%의 점유율로 한국 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희수 오픈테크 사장은 “최근 중국의 성장세를 볼 때 저급뿐 아니라 고급 모델 시장 잠식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방송·엔터테인먼트 전시회인 ‘지멕스’에서 중국은 저급 모델에서 고급 모델까지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주최국인 아랍에 이어 가장 많은 규모인 25개 업체나 참가하는 등 눈길을 끌었다. 특히 시에타와 같은 업체는 비아액세스·나그라비전·NDS 등 다양한 CAS 인증 셋톱박스를 선보여 국내 업체를 긴장시켰다.
서두인칩 손광섭 전무는 “그동안 셋톱박스 시장에서 중동과 유럽의 내로라하는 자국 브랜드 업체도 제품가격이 좀 비쌀지언정 한국 업체의 기술력을 인정해 주었지만 최근 한국산 못지 않은 성능의 중국산 제품이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김진묵 에이엠티 사장은 “중동과 유럽 시장에서 한국 업체와 직접적으로 맞부딪치는 제품이 중국산”이라며 “중국으로의 선진기술 유출을 막고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인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중동·유럽서 저가공세…로엔드 점유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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