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다자간무역협상인 도하개발아젠다(DDA)에서 방송서비스 분야를 시장개방에서 제외한다는 원칙을 고수한 가운데, 지난 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 당시 이미 일부 방송분야 시장개방을 허용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더구나 이달안으로 양허안을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방송위원회와 문화관광부가 UR 협정 가운데 방송서비스 분야 내용을 놓고 해석을 달리해 DDA 협상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난 94년 UR 협정 당시 방송분야 주무부처였던 공보처(문화관광부로 통폐합)는 UR 협상에서 ‘케이블TV 방송공급업을 제외한 영상 및 비디오 제작·배급 서비스’ 분야는 △국경간 공급 △해외소비 △상업적 주재(현지법인 설립) 등 3가지에 대해 어떠한 시장제한도 두지 않는다고 양허협정을 맺은 것으로 밝혀졌다. 관련기사 6면
이에 따라 이달말까지 각국이 양허안을 제출, 본격화할 DDA 협상에서 정부는 당초 방송개방 불가방침을 정했으나 WTO 회원국들이 당장 국내 위성방송 PP에 대한 시장개방을 요구할 경우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으며, 이에 반하는 방송법마저 개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는 공보처가 시장개방을 수락하는 양허협정 당시 서비스가 시작되던 케이블TV방송 분야의 보호에만 관심을 두고 기술진전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위성방송 등 뉴미디어를 소홀히 여긴 것으로 정부의 협상준비 부재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있다.
국제 통상법 전문인 왕상한 서강대 법대 교수는 “당시 우리 정부가 맺은 양허표를 분석해보면 방송 관련법과 외국의 사례 및 현황에 대해 충분한 사전검토와 중장기적 안목 없이 협정을 맺은 것이 분명하다”며 “이 경우 얻을 것도 못 얻게 된 최악의 협상”이라고 말했다.
또 DDA 협상이 진행되면 WTO 회원국들이 국내 양허표에 대한 심층적인 검토가 예상되며, 이들 국가가 UR 협정에서 맺은 국내 양허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경우 위성방송 등에 영화·드라마·만화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PP에 대한 개방을 더 이상 제한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왕 교수는 “다자간무역협상은 기본적으로 ‘주고 받는 것’이 원칙이며, 최대한 주지 않으면서 최대한을 얻는 것이 최선”이라면서 “이미 국제 사회에서 우리가 약속한 만큼 지키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외교통상부는 방송위원회·문화관광부와 협의해 이달말까지 WTO에 시청각 서비스 분야에 대한 국내시장 개방 부분을 명시하는 양허안을 제출해야 하는데 두 부처의 입장이 엇갈려 협상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관광부는 UR 협정 당시 시장개방을 전면 허용한 서비스가 PP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반면 방송위원회는 해당서비스가 명확히 국내 방송법상 PP를 의미한다고 각기 달리 해석하고 있다.
<유병수기자 bjor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