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은 옛부터 좋은 집에 대한 집착이 유별났다. 좁은 국토에 사는 콤플렉스 때문인지 몰라도 일단 돈을 벌면 더 넓은 주거공간으로 옮기는데 투자하는 것이 한국인의 공통된 성향이다.
하지만 좋은 주거공간에 대한 개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 최근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초고속통신망이 구축된 아파트단지를 선호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건축전문가들은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21세기에는 좋은 주택의 평가기준도 크게 바뀔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가정자동화를 목표로 많은 홈로봇이 개발되고 있지만 상용화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이는 로봇자체의 기능부족도 원인이지만 현재 사람이 사는 생활공간이 로봇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탓도 크다. 우리가 사는 주택환경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로봇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사람 사는 집에 화장실이 있어야 하듯 로봇을 부리는데도 최소한의 편의시설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현재 주택구조를 로봇기동에 맞춰 재시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전문가들은 로봇이 활동하기에 편한 주택이 곧 사람이 살기에도 좋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로봇에 의한 가정자동화가 대세라면 처음부터 사람과 로봇을 함께 고려하는 새로운 건축개념이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주택 자체가 직접 사고하고 판단해 인간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인텔리전트홈 환경이 구현되면 가정용 로봇의 활용가치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상해보자.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가 자신의 입을 가리키며 물을 마시는 손짓을 하면 벽에 붙은 카메라가 이를 감지한다. 퍼스널로봇은 잠시 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환자에게 갖고 온다. 미래의 좋은 주택이란 주택과 로봇이 일체화된 자동화 시스템으로 가치가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지능화된 주택 안에서 홈로봇은 전자레인지를 데우고 빨래통에 옷을 집어넣는 일까지 수행하는 등 기능성이 향상된다.
로봇이 선호하는 주거환경은 공장의 생산라인처럼 예측가능한 정돈된 공간이다. 이런 점에서 정형화된 주거공간(아파트)의 보급률이 50%가 넘는 한국은 로봇기술과 주택건설의 결합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강남의 귀족타운으로 등장한 초호화 아파트단지는 이미 첨단로봇기술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 요즘 새로짓는 아파트는 문턱도 없어져 로봇기동에 유리하다. 한 대기업은 로봇사용을 전제로 아파트시공 때 장판 밑에다 로봇이동경로를 미리 표시해두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로봇생산에서 아파트건설까지 수직화된 사업능력을 지닌 한국 대기업만이 가능한 일이다. 비록 일본이 로봇왕국이지만 그들의 목조식 2층 건물은 로봇활용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한국의 대규모 아파트단지는 가정용 로봇산업 발전의 주요 인프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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