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꿈의 세상’.
텔레매틱스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미래상이다. 텔레매틱스란 (무선)통신(Telecommunication)과 정보과학(Informatics)을 합성한 첨단 IT서비스 신조어. 글자만 따져보면 차와 무관한 듯 느껴지지만, 텔레매틱스의 원천은 자동차였다. 중앙관제센터와 차량이 무선통신으로 이어지고 운전자가 원하는 각종 정보서비스를 자동차 안에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바로 텔레매틱스인 것이다.
초창기만해도 자동차는 인간의 육체노동을 덜어주는 단순한 운송수단에 불과했다. 달리고 멈추는 주행능력이 전부였던 셈. 이어 고도의 산업사회로 넘어가던 시절부터는 환경과 운전자의 안전이 우선적인 고려대상이 됐다.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급급했던 전통사회의 생활상이 인간복지와 자연친화라는 삶의 질 문제로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한단계 더 진보해 보다 인간적인 자동차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인간친화형 자동차의 상은 바로 텔레매틱스를 통해 점차 현실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에서 향유할 수 있는 정보서비스, 즉 텔레매틱스의 응용분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텔레매틱스를 자동차 주행기능 외에 운전자에게 정보와 오락을 주는 정보통신서비스로 넓혀보면 지난 1920년대 카라디오가 그 모태다.
고주파(RF)를 통해 전달된 방송은 오락과 더불어 날씨·교통·뉴스 등 유용한 정보를 차안에서도 들을 수 있게 한 획기적인 서비스였다. 카라디오는 지난 80여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이제 지상파TV도 수신할 수 있는 이른바 카 오디오비디오(AV) 시대로 발전했다. 하지만 아무리 탁월한 기능성을 갖춘 카AV시스템도 미래형 텔레매틱스와는 거리가 멀다.
텔레매틱스는 종전 방송채널 외의 전용 무선통신을 통해 ‘운전자의, 운전자를 위한, 운전자에 의한’ 양방향 정보서비스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차량내에 장착되는 전용 단말기와 이를 관장하는 원격지원센터는 텔레매틱스 서비스의 인프라다.
온전한 의미의 텔레매틱스는 지난 96년 GM이 자동차 원격 긴급구난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처음 등장했다. 비슷한 시기 포드와 다임러 크라이슬러도 텔레매틱스 대열에 가세했고, 국내에서는 대우차가 ‘드림넷’이라는 서비스 브랜드로 지난 2001년 첫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SK와 SK텔레콤이 각각 ‘앤트랙’과 ‘네이트 드라이브’ 서비스로 텔레매틱스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인 태동기를 맞고 있다.
지난 수년간 시도돼 온 국내외 텔레매틱스 서비스는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긴급사고시 안전과 구난을 지원하고, 최단시간 주행을 위한 도로교통 정보 제공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앞으로는 각종 엔터테인먼트와 정보, 안전까지 동시에 구현할 서비스가 차세대 텔레매틱스로 주목받고 있다. 차세대 텔레매틱스는 자동차의 AV기술과 무선통신을 완벽하게 접목, 정보사업자에게는 엔터테인먼트와 유료정보 판매, 일대일 고객서비스를 가능하게 하고 운전자들은 양방향 통신을 통해 지능형 차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차세대 텔레매틱스가 가져올 또 다른 시장 기회로는 가까운 미래에 자동차 애프터마켓이 본격적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차는 공장에서 만들어 팔고 나면 그만이라는 게 통념이었다. 하지만 정비나 중고차 판매, 각종 소모품 교체 등 차량출시 이후에도 운전자들의 서비스 수요는 이어진다. 텔레매틱스는 운전자와 끈끈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애프터마켓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채널인 셈이다. 최대의 완성차 메이커인 현대기아차가 평생고객화를 겨냥해 텔레매틱스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나, SK·삼성화재 등 자동차 주변의 기업들이 신시장에 대한 기대감에 적극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래 텔레매틱스 시장에서 유력한 성공국 가운데 하나로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세계 최고의 이동통신 보급률과 비교적 좋은 조건의 도로 환경, 신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빠른 흡인력 등이 그 배경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