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세계 텔레매틱스 시장은 거센 변화를 맞고 있다.
자동차가 달리는 것 이외에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 것은 90년대 이후 텔레매틱스 개념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자동차가 단순한 운송수단을 넘어 생활공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따라 더욱 다양한 수요와 기술이 텔레매틱스 개념을 진화시키고 있다.
텔레매틱스업계도 이제는 90년대식 발상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빠르게 진행되는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지금까지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주도해 온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목표는 GM의 ‘온스타(OnStar)’를 제외하면 서비스 자체를 통한 수익창출보다는 점차 고객관계관리(CRM)와 브랜드 이미지 강화로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
자동차의 사무실화 추세에 따라 텔레매틱스 백오피스 서비스 프로바이더들이 출현하고 있는가 하면 가상이동망사업자(MVNO) 등 새로운 무선통신 사업자들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보험업계의 시장진출 역시 가시화되고 있다.
텔레매틱스 분야가 이처럼 차세대 유망사업으로 부상하면서 관련업계는 오는 2010년경 자동차 내장형 위치측정시스템(GPS)과 위성라디오, 이동통신서비스 등 IT관련 시장규모가 미국·유럽·일본을 중심으로 큰 폭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트너그룹에 따르면 하드웨어 시장과 서비스 매출총액은 2000년 36억달러에서 2005년에는 270억달러로 규모가 크게 성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지난 96년 미국에서 개화된 텔레매틱스 시장은 현재 세계적으로 높은 관심을 모으면서 추진되고 있다. 유럽은 독일을 중심으로, 일본에서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맞춰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들은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해 하드웨어시장은 연평균 30∼40%, 서비스시장은 7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런 성장세를 기반으로 2010년경에는 신차 대부분이 텔레매틱스 시스템을 기본으로 장착할 것으로 예상돼 시장규모가 2007년의 경우 3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비스와 기술도 보다 다양해질 전망이다. 텔레매틱스 서비스는 기존에 단순히 자동차 관리와 응급구난 서비스 중심으로 제공되던 개념에서 최근에는 위치기반서비스(LBS:Location Based Service) 등 무선인터넷 개념을 도입한 멀티미디어 서비스로 정의되고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텔레매틱스는 인공위성 GPS, 무선망 기반의 단말기, 운영체계, 통신 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관련업계의 최근 관심사로는 단말용 운용체계에 대한 선택문제, 차내 텔레매틱스 데이터 버스의 표준화, 무선통신용 오토모티브 블루투스의 채택여부 등이다.
현재 유력한 텔레매틱스 단말 표준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CE 포 오토모티브’다. 마이크로소트는 ‘닷넷(.NET)’ 전략의 일환으로 자동차 전용 플랫폼인 ‘카닷넷’을 개발해 왔다. ‘윈도CE 포 오토모티브는 이 카닷넷의 핵심 프레임워크인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에 발맞춰 선 등 경쟁사들도 텔레매틱스 운용체계 개발에 뛰어들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크게 주목을 끌고 있지 않다.
텔레매틱스 업계는 이밖에 차내 휴대기기나 임베디드 기기간 무선통신을 위해 블루투스 기술을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블루투스 표준화 기구인 블루투스SIG(Special Interest Group)에 참여한 업체들이 자동차를 위한 오토모티브 블루투스를 개발중이다.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
<해외 사례>
◇유럽-2002 파리 오토쇼
모터쇼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미래의 차량을 미리 볼 수 있는 컨셉트카다. 10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2002 파리 오토쇼’에서도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를 비롯한 최첨단 자동차들이 등장해 144만여명에 이르는 관람객으로부터 관심을 끌었으며 대부분의 참가업체는 미래형 자동차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인 텔레매틱스 제품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특징은 고객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저가형 텔레매틱스 플랫폼이 다수 등장했다는 것이다. 델파이의 ‘R@dio’<사진 1>가 대표적이며 가격은 1000유로가 채 안되지만 내비게이션과 웹브라우징, 통신기능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콘텐츠가 메인보드밖에 설치돼 있어 프로세스의 효율성을 높였다.
저가형에서 고가형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자랑하는 RT3<사진 2>는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던 텔레매틱스 시스템으로 조만간 푸조, 시트로엥, 르노, 란시아 등의 자동차에 적용될 예정이다. RT3는 전화, 내비게이션, 음악, 긴급구조 등의 기능을 제공하며 올해말께는 차량 모니터링 기능과 다양한 컨텐츠 제공 서비스도 도입될 전망이다.
또 볼보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XC90에 GSM폰을 내장한 텔레매틱스 시스템<사진 3>을 선보였으며 BMW는 3-, 5-, X-시리즈 차량에 블루투스 인터페이스<사진 4>를 장착하고 PDA를 활용한 다기능 플랫폼<사진 5>을 선보이는 등 신기술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밖에 메르세데스 메이바흐는 고급형 제품인 ‘커맨드 APS’를 선보였다. 이 시스템을 통해 운전자는 음성명령만으로 내비게이션은 물론 통화, 단문메시지서비스(SMS), e메일, 메르세데스-벤츠 온라인 포털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다.
◇일본-혼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일본 자동차회사인 혼다의 텔레매틱스 차별화 전략이다. 혼다는 지난해 10월 ‘인터나비 프리미엄 클럽’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기존 ‘인터나비’ 서비스에 음성인식기능 등을 추가한 업그레이드 버전이지만 고객의 소리가 모여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로 재탄생해 관심을 끌고 있다. 서비스 개시 전 혼다는 기존 ‘인터나비’ 회원 2000명과 비회원 2000명 등 총 4000명을 대상으로 새로운 서비스에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전국도로교통정보 제공’과 ‘원활한 지도정보의 갱신’이라고 대답한 고객이 가장 많았다. 혼다는 즉시 전국 어디에서든 목적지까지의 교통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게 했다. 과거에는 데이터수신지역이 한정돼 있어 전국을 망라한 정보입수는 불가능했다.
이같은 전국단위 도로교통정보 제공이 가능해진 데는 지난해 6월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민간기업도 일본도로교통정보센터(JARTIC)나 도로교통정보통신서비스(VICS)센터 등에서 취득한 교통정보 데이터를 자유롭게 편집·가공해 재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가의 정책흐름 변화를 잘 읽어낸 성과다. 혼다는 또 초기 3년간은 지도데이터가 담긴 DVD롬을 무료교환해주기로 했다. 단순한 공짜정책이 아니냐 하겠지만 혼다는 1년에 한번씩 판매점을 찾아오는 소비자들에게 수리·점검 서비스를 판매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이밖에 시간흐름에 따른 정체구간 변화를 감안해 적합한 경로를 알려주는 ‘정체예측 서비스’나 안전운전을 위해 커브시 미리 알려주는 주행 어시스트 기능, 소모품 등의 관리시기를 자동으로 통지해주는 기능들은 모두 고객의 요구에 따라 등장한 것이다. 혼다의 ‘인터나비 프리미엄 클럽’은 철저하게 고객의 소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편리하지만 없어도 그만인’ 수준에 머물러 있던 텔레매틱스가 ‘꼭 필요한’ 서비스로 자리매김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