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서비스 등 정보기술(IT)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사업 조직을 갖고 있는 ‘종합백화점 IBM’은 세계 최대 컴퓨팅기업답게 연구조직도 세계 최대다. 미·일·유럽 등 전세계 6개국에 8곳의 연구소를 갖고 있으며 보유하고 있는 엔지니어와 과학자만 해도 17만명에 달한다. 또 매년 평균 50억달러 이상을 연구개발(R&D) 비용으로 투자, 지난 수십년간 여러 컴퓨터 관련 제품을 최초로 개발, 상품화했다. 지난해에는 10년 연속 미국내 최대 특허출원기업이라는 영예를 따내기도 했다.
17일 방한한 닉 도노프리오 IBM 제조 및 기술담당 부사장(57)은 IBM의 이러한 연구 및 기술 부문을 총괄하는 IBM내 서열 5위안 거물이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그 자신이 IT업체에 36년간이나 종사한 기술분야 대가이기도 하다. 전임 IBM 최고경영자(CEO) 루이스 거스너는 그의 자서전(코끼리를 춤추게 하라)에서 “도노프리오는 내게 하이테크 세계의 말을 비즈니스의 세계의 언어로 번역해 준 인물”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본지가 독점으로 도노프리오를 만나 IBM이 명운을 걸고 전사적으로 추진하는 ‘e비즈니스 온 디맨드’(e-business on demand)과 세계 IT시장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 봤다.
-IBM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e비즈니스 온 디맨드`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또 경쟁사인 휴렛패커드(HP)와 선마이크로시스템스는 각각 AI(Adaptive Infrastrure)와 N1을 기치로 내세우며 IBM처럼 “기업의 경비절감에 최적의 솔루션이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쟁사에 비해 IBM이 갖는 강점은 무엇인가.
▲나는 지난 36년간 IT업계에 몸담아 왔다. 그리고 이같은 긴 세월 동안 IT업계는 늘 변화가 화두였다. 우리가 강조하고 있는 ‘e비즈니스 온 디맨드’ 역시 변화를 주목한다. 하지만 ‘e비즈니스 온 디맨드’에서 이야기하는 변화는 이전과 차원을 달리한다. ‘e비즈니스 온디맨드’에서의 변화는 경영 프로세스에 대한 변화를 일컫는다. 그것도 일반적 경영부터 시작해 시스템 구축은 물론 그리고 각 기업이 나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해준다.
아시다시피 IBM은 최고의 기술업체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컴퓨터와 관련된 많은 제품을 개발, 보급해 왔다. 하지만 IBM이 하드웨어와 컴퓨터 서비스에 비해 지난날 소프트웨어 분야가 다소 미흡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데이터베이스2(DB2)를 비롯해 티볼리, 로터스 소프트웨어 등 최근 인수한 개발툴 업체 내셔널소프트웨어까지 소프트웨어 분야도 개방과 표준을 요구하는 기업의 수요에 적극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하드웨어를 비롯해 서비스, 소프트웨어 분야까지 다양하고 우수한 제품을 가지고 있는 IBM이 시장에서 이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IBM은 작년에 3288건의 특허를 출원, 10년 연속 미국내 최대 특허출원기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R&D에 대한 올해 IBM의 투자액은 얼마인가. 또 R&D를 촉진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나.
▲우리는 전세계 6개국에 총 9개의 연구시설을 갖고 있다. 이 중 아시아에는 가장 먼저 문을 연 일본을 비롯해 중국, 인도 등에 시설을 두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32만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데 이중 절반 이상인 17만명이 엔지니어나 과학자들이다. 그만큼 우리는 R&D를 중요시하고 있다. 또 신기술을 개발한 사람에게는 포상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회사에 노벨상을 받은 사람도 다수 있다. R&D에 투자하는 액수는 매년 달라지지만 연간 평균 50억달러 정도된다.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개발한 신기술을 상품으로 연결하는 비중이 90% 이상이나 된다는 점이다. 그만큼 우리는 연구에서도 효율성을 중요시하고 있다.
-한국의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허브를 기치로 외국의 연구시설이나 공장, 특히 대표적 다국적기기업 IBM 같은 회사가 한국에 연구시설을 투자하기 원한다. 한국에 연구시설을 세울 생각은 없는가.
▲매우 흥미있는 질문이다. 한국의 인력이 매우 우수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IBM이 한국에 연구시설을 유치하느냐 안하느냐는 사실 전적으로 한국에 달려있다. 경제상황, 문화인프라 등 한국의 조건이 매력적이라면 IBM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싱가포르, 인도와 같은 재판이어서는 안된다. 투자를 이끌어낼 만한 한국만의 독특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인터넷처럼 이전의 히트상품이 없는 것이 현재의 세계 IT경기 정체를 불러온 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60∼70년대의 반도체와 80년대의 컴퓨터 그리고 90년대의 인터넷을 이어 2000년대에 세계IT시장을 이끌어갈 핫 아이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제는 더 이상 기술(technology)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 프로세스다. 앞으로는 더 이상 이전 같은 킬러애플리케이션(현 상품이나 기술을 밀어낼 유망 신상품 및 신기술)이 없다. 오로지 어떻게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합리화, 효율화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것이냐가 중요하다.
물론 IBM은 자동화기술이나 그리드컴퓨팅 같은 신기술을 개발해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이전과 같은 기술과 상품보다는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초점을 둬야 하고, IBM도 기업의 비즈니스 프로세스 개선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삼성, 인텔 등 세계적 반도체업체들이 300㎜ 반도체 건설에 잇달아 투자하며 경쟁하고 있다. IBM의 이에 대한 대응책과 차세대 반도체에 대한 IBM의 연구개발 노력을 이야기 해달라.
▲우리도 이미 지난해 7월 뉴욕 이스트피시킬에 25억달러를 투자해 300㎜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등 300㎜시대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또 차세대 반도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M(Magenetic)램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갔고 있고 이 칩이 향후 시장에서 각광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IBM도 M램을 상용화하기 위해 최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세계 IT시장의 총아로 부상하고 있는 웹서비스가 예상밖으로 더디게 개화하고 있다. 웹서비스에 대한 전망과 IBM의 전략은 무엇인가.
▲웹서비스가 느리게 진행하고 있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웹서비스는 어느 분야에 적용하느냐에 따라 개념이 달라지는데 IBM은 개방형 표준을 적용, 서로 다른 단말기들을 연결하는 등 이미 웹서비스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재의 IT시장은 너무 광활하다. 한 회사가 모두를 도맡아서 할 수 없다. 만족할 만한 웹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업체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IBM도 다른 업체와 공조를 강화하면서 웹서비스 시장 선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
□ 닉 도노프리오 IBM 수석 부사장은 누구인가
닉 도노프리오 IBM 수석 부사장은 IBM의 전세계 기술개발과 상용화를 책임지고 있다. 책임지고 있는 하부조직에는 IBM 연구조직, 퍼스널시스템(PC제품군)사업부, e비즈니스 온디맨드 지원팀, 통합 공급사슬 및 통합 제품 개발팀, 수입 및 대정부 관계팀, 환경 및 제품안전/퀄리티 담당부서 등이 있다.
수십년을 한눈 팔지 않고 기술분야의 외길을 걸어와 업계에서 ‘기술대가’로 두루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영국 왕립공학아카데미로부터 엔지니어들의 최고 영예인 펠로(Fellow)로 선정되기도 했다.
IBM에 입사하면서 초기에는 로직과 메모리 칩 설계자로 IC와 반도체 개발 분야에서 일했었지만 이후 반도체에서부터 스토리지, 마이크로프로세서, PC, 서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IBM의 제품 사업부서를 진두지휘해왔다. 현재의 직책은 지난 97년 처음 맡았다.
71년 시러큐스대에서 전기공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99년과 2002년에는 각각 폴리테크닉대와 영국워릭대에서 명예 공학박사와 명예 과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 7개의 기술특허를 갖고 있는 그는 국제전기전자학회(IEEE)의 펠로와 미 국립공학아카데미의 회원, 렌셀레어종합기술연구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도노프리오는 경쟁의 열쇠는 교육, 특히 수학과 과학의 진흥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소수자와 여성을 위한 고등교육과 고용기회 창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