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일은 세계 기상의 날이다. UN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2003세계 기상의 날’의 주제를 ‘미래의 기후’로 상정했다. 즉 기상기후 이변에 대한 대처능력을 강화하고 올 한해 세계 모든 국가들이 이 부분에 더욱 주력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상기후, 기상이변은 단일 국가차원의 문제를 넘어 전 세계적인 이슈로 부각되고 있으며, 이는 전 지구적 차원의 심각한 문제로 다가선지 오래다. WMO의 ‘미래의 기후’는 특히 슈퍼컴퓨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인간이 컴퓨터를 발명한 이래 ‘거대화두’라고 명명될 정도로 자연재해 문제를 푸는 슈퍼컴퓨터의 역할에 대해선 그 누구도 시비를 논하지 않고 있다. 미래의 기후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상정된 올해 기상청은 2006년 10테라플롭스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 2호기 도입을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2003년 기상의 날을 맞아 기상청의 슈퍼컴퓨터 2호기 도입의미를 통한 ‘한국의 예보 미래’를 점쳐본다. 편집자
*기상청 `슈퍼컴 2호기` 도입 의미
내년 연말에 도입될 슈퍼컴퓨터 2호기는 현재 224기가플롭스 수준의 슈퍼컴퓨터 성능을 오는 2006년께 10테라플롭스(TF/s:1초에 1조번 연산)까지 확장시키는 첫 걸음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도 테라플롭스시대로 접어든 선진 슈퍼컴 대열에 동참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슈퍼컴 2호기 도입목적은 용량 확장 그 자체로 알려져 있다. 지난 99년에 도입한 SX-5/16A의 CUP 가동률이 90%, 2000년 도입한 5/12A의 가동률이 100%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상청은 슈퍼컴 2호기 도입목표가 단순히 CUP 가동률이 포화돼서 용량을 증설하는 자체가 절대적인 목표가 아님을 강조한다.
기상청이 강조하는 슈퍼컴퓨터 2호기 도입목적은 △자료동화기업 도입 △앙상블기업 도입 △고해상도 모델을 이용한 악기상 조기예측 체제 구축, 그리고 이를 통한 디지털예보 기반 구축과 한국형 수치예보 모델 개발의 물리적 토대를 마련하는 초석 등이다.
자료동화기법은 수치예보의 정확도를 향상시키는 중요한 과정이다. 즉 현재의 대기상태를 컴퓨터 상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으로 위성·레이더 등의 관측자료를 슈퍼컴에 입력해 시뮬레이션하게 된다. 자료동화는 1차원부터 4차원까지 있는데 현재 슈퍼컴퓨터 용량으로는 1차원 수준밖에 실현 못한다. 선진예보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관인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의 경우 4차원 자료동화 과정을 실현하고 있으며, 2560기가플롭스 성능을 구현하는 슈퍼컴퓨터가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자료동화가 그래픽상의 문제라면 앙상블기법은 예보의 부정확성을 줄이는 통계적 접근이다. 쉽게 생각해도 되도록이면 많은 데이터(맴버:앙상블에서 1개체를 맴버로 표현)를 돌릴 때 통계는 정확하다. 현재 기상청은 17맴버를 토대로 예보통계를 내지만 미국은 100개, ECMWF는 50개(연말 100개 맴버로 확대), 일본 25맴버를 토대로 하고 있다. 이 역시 슈퍼컴퓨터의 성능과 직결돼 있다.
기상에서 두가지 기법의 도입은 디지털예보를 구현하는 초석이다. 디지털예보는 역으로 우리 예보관행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TV나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일기예보는 ‘서울 경기 한때 흐리고·비’라는 방식으로 아날로그예보로 불린다. 디지털예보는 ‘서울 어느 지역이 몇시부터 몇시까지 비가 온다’는 보다 구체적인 예보구현을 의미한다. 디지털예보로 첫발을 내디딘 미국의 경우 2.5㎞ 단위로 날씨예보가 나가고 있다.
디지털예보를 구현하려면 결국 앞서 언급한 고도의 기법과 고해상도가 전제로 돼야 한다. 해상도의 경우 현재의 2배 수준으로 올리려면 계산량이 10배로 늘어나야 한다. 이는 역으로 현재 슈퍼컴퓨터 용량에서 해상도를 높일 경우 예보시간은 10시간 뒤로 늦춰진다는 것이기 때문에 현 조건에서는 구현할 수 없다.
결국 슈퍼컴퓨터의 용량을 증설하는 이유는 ‘지역과 기상조건을 구체적으로 예측해 자연재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분석기법을 고도화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대전제에서 시작된다.
이른바 ‘우리나라의 지형에 맞는 한국형 수치예보 모델 개발 계획’의 물리적 토대를 만드는 것 또한 이런 뒷받침이 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2560.00기가플롭스의 성능을 구현하는 2개의 슈퍼컴퓨터를 운영하고 있는 ECMWF의 경우 전체 자원의 25%를 현업운영에 사용하며, 이중 10%가 실제 예보모델의 현업운영, 45%가 위성자료 등을 이용한 자료동화, 나머지 45%는 앙상블 예보에 사용하고 있다.
*98년 슈퍼컴퓨터 1호기 도입 이렇게 달라졌다
지난 98∼99년 한해 국내 기상재해로 인한 상망자수는 473명. 이 수는 2000∼2001년 131명으로 342명이 줄어들었다. 이런 수치는 여러 가지 객관적인 요소가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지난 99년 4월, 기상청 설립 이래 처음 가동한 슈퍼컴퓨터 역할이 한 몫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상청의 슈퍼컴퓨터(현재 SX-5/12A) 도입 이후 기상예보는 정확도가 83%에서 85%로 올라섰다.
기상예보에서 1, 2%의 정확도를 향상시키는 것은 절대 얕잡아 볼 일이 아니다. 한국행정학회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예보 정확도가 5% 향상될 경우 재산 피해 감소액은 약 10%다. 결국 2% 예보 정확도 향상으로 인한 재산피해 감소액이 4%라고 추정할 때 2000∼2001년 피해 및 복구비 2136억원을 절감시킨 효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기상청이 슈퍼컴퓨터를 도입한 경제적 효과는 2000억원 규모로 투자대비 15배의 효과를 올렸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 단기예보의 경우 현재 6시간 예보, 서울지역을 비롯한 일부 대도시의 경우 3시간 단위의 예보체제로 들어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으며, 1개월 및 3개월 단위로 실시한 계절예보도 슈퍼컴 도입 이후 실시할 수 있었다.
*기상청 전세계 슈퍼컴퓨터와 성능 차이 얼마나 날까
기상청 슈퍼컴퓨터 1호기는 지난 99년 4월 2개 CUP로 4기가플롭스 성능구현을 시작해 현재 224기가플롭스 처리성능을 구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슈퍼컴퓨터가 없던 시절이 불과 5년 전이라고 볼 때 엄청난 발전이지만 전세계 슈퍼컴퓨터 성능 순위를 매기는 톱500닷오아르지(http://www.Top500.org)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354위로 선진국과 격차를 좁히기에는 아직도 멀었다.
현재 전세계 슈퍼컴퓨터 성능 1위인 일본 ‘어스-시뮬레이터(Earth-Simulator)’의 경우 2002년 11월 기준 3만5860.00기가플롭스다. 현재 3337.00기가플롭스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기상청은 ‘자존심’을 다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 기상청은 오는 2009년까지 100테라플롭스로 성능확장 계획을 이미 세웠고, 영국 기상청 역시 현재 1.55테라플롭스 수준의 슈퍼컴퓨터를 2005년까지 30테라플롭스로 확장한다.
이미 전 세계 슈퍼컴퓨터 시장은 ‘테라플롭스’ 시대가 열렸다. 지난해 11월 조사된 톱500닷오아르지의 슈퍼컴퓨터 톱500 리스트에서 전세계 슈퍼컴퓨터 10위권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린팩 기준으로 최소 3.2TF/s는 넘어야 한다.
기상청의 목표가 오는 2006년께 10TF/s 성능구현으로 슈퍼컴퓨터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지만 경쟁국인 일본의 경우 이 시기 20TF/s 구현을 목표로 슈퍼컴퓨터 용량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기상청은 아예 슈퍼컴퓨터와 백업시스템을 구분해 매년 각각 1770만∼1850만달러, 800만달러의 예산을 책정, 오는 2011년까지 총 5310만달러, 2400만달러의 예산을 책정해 놓고 있다. 슈퍼컴퓨터 선진국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기상청 기상예보 어떤 과정 통해 이뤄지나
기상청 업무에서 슈퍼컴퓨터의 중요도는 더말할 나위 없지만 필요한 원천 데이터가 있어야 슈퍼컴퓨터도 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볼 때 기상예보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손’들이 움직여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우선 531개 관측소, 10개 항공자료, 25개 등대, 23개 낙뢰 등 12개의 서로 다른 성격의 관측기관으로부터 기상 데이터 자료를 받는다. 행자부·농진청 등 10개 유관기관의 데이터도 방화벽을 타고 종합기상정보시스템으로 들어오며, 세계기상통신시스템(GTS)을 비롯해 원격탐사분석시스템·지진분석시스템·무선기상FAX기상방송시스템과 같은 응용분석시스템으로부터 나온 자료도 기상정보시스템으로 합쳐진다.
26개소 아마추어무선국(2004년까지 39개소)에서 시시 각각 보내오는 긴급기상정보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예보’의 중요한 축이고, 400개 자동관측소에서 1분마다 전달돼오는 자료가 합쳐져 예보관들이 화면을 통해 전국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자료 역시 중요하다.
*인터뷰: 정순갑 기상청 정보화관리관
“사실 미래 예측이나 전망이 85% 맞는 것은 일기예보 뿐이 없을 것입니다. 경제나 주가에 대한 전망과 비교해도 쉽게 알 수 있죠.”
슈퍼컴 1호기 도입 이후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예보 정확도의 상승에 대한 정순갑 정보화관리관(50)의 설명이다. 물론 이것도 슈퍼컴 도입 이후 바로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 당초 목표보다는 1년 앞당겼지만 소프트웨어 개발과 관련된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견해는 슈퍼컴 2호기 도입이라는 큰 숙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6년께 10테라플롭스 성능구현을 목표로 한 슈퍼컴 2호기 도입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외부 관계자들은 슈퍼컴 2호기 도입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다.
“슈퍼컴퓨터 도입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슈퍼컴 용량이 늘어났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된다고 생각하거나 도입 직후 바로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에 많은 오해가 발생한다”고 정 관리관은 당부한다.
정 관리관이 기상청 CIO로 발을 내디딘 것은 지난 2000년 4월. 당시 ‘기상개발관’으로 불리던 역할이 중앙인사위원회에서 관할하는 ‘개방형직위’로 바뀌면서 공모를 통해 제 1호 CIO로 선발됐다.
슈퍼컴 1호기 도입에 관여하면서 슈퍼컴퓨터뿐만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한 주변 인프라를 이해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도전했다는 정 관리관은 햇수로 3년간 기상청 CIO를 맡으며 “자연과학과 IT는 더욱 빨리 접목돼야 함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한다.
기상청의 IT는 예보국을 지원하는 단순 기술측면이 아니라 중앙행정부처로서 예산을 확보해 IT와 기상기술(MT)을 이용한 대국민 서비스 역할을 맡아야한다는 것이다.
“기상청뿐 아니라 다른 행정기관에서 수집한 기상관측자료를 한 곳에 모으는 국가기상자료센터 하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정 관리관은 “디지털예보 체제로 전환은 정부와 온 국민이 나서야 이룰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신혜선 shinh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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