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부시의 전쟁`]긴급 좌담회

 미군의 전면공격으로 이라크전이 본격 발발함에 따라 국내외 경제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장 대중동 수출에 미치는 영향과 국제유가의 향방 등이 초미의 관심사다. 국내에서는 종전후 부시 행정부의 북핵문제 접근법에 대한 완급과 그에 따른 국내경제의 파급영향 등에 귀추가 주목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본사 회의실에서 각 분야 최일선에서 이같은 문제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초청, 긴급 좌담회를 열고 이라크사태에 따른 IT분야 등 전 산업계의 영향과 그에 따른 대응책 등을 짚어봤다.

 <참석자>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정의석 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장, 설진영 토필드 영업이사, 홍희 KOTRA 중동담당 차장

 <사회> 황도연 본지 국제부 기자 

 ◇사회=마침내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라크전이 국내외 경제나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부터 살펴봤으면 합니다.

 ◇정의석(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장)=역시 국내외 증시가 이번 전쟁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듯합니다. 시장 내부에서는 단기전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는 하지만 전쟁 조기종결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할 듯합니다.

 ◇이지평(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번 전쟁의 포인트는 전쟁기간의 장단과 유정파괴의 여부입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3개월내에 미국의 승리로 이번 전쟁이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장단기 향배는 개전 3일내에 판가름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유정파괴 여부는 곧 국제유가의 전망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홍희(KOTRA 중동담당 차장)=이번 전쟁은 우리나라의 대중동 수출과 직접 연관이 됩니다. 현재 한국의 대이라크 수출은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우리나라 수출에 직접적인 타격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이라크 외 중동국가로의 수출이 어떤 영향을 받느냐가 관건인데 지난 91년 걸프전 때를 상기해보면 다국적군의 승리로 대중동 수출이 바로 회복세로 돌아선 선례가 있어 다소 희망을 가져봅니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은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설진영(토필드 영업이사)=셋톱박스 수출업체인 저희 회사가 이달초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국제 방송기기 전시회에 참가했을 때 그곳 바이어들과 대화를 나눠본 결과, 이미 그때부터 현지인들은 전쟁발발을 기정사실화하고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더군요. 최근 전쟁이 당연시되자 오히려 중동지역에서 주문이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정의석=이번 전쟁으로 오히려 각광을 받는 아이템들이 있습니다. 휴맥스 등을 비롯해 셋톱박스 관련업체들이 이른바 대표적인 전쟁수혜주라 할 수 있지요. 지난 걸프전 때도 그랬지만 CNN 등 위성방송을 통한 전쟁의 생중계가 이번에는 더욱 생생하게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셋톱박스 등 관련제품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사회=개전에 따라 우려되는 문제점도 다양하게 표출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지평=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세계경제의 침체를 이라크사태라는 불확실성에서 찾았습니다. 따라서 전쟁의 발발은 곧 불확실성의 소멸을 의미해 세계경제의 회복으로 직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이라크사태만이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던 것이었냐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즉 지금의 세계 경기불황은 세계 IT경기의 부진, 미국의 재정적자 심화, 세계 생산의 과잉화 지속 등이 복합·유기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발발과 조기종결에 따른 지나친 낙관론은 위험합니다.

 ◇정의석=증시의 고민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단기전으로 끝날 때 소위 부시의 일방주의가 심화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죠. 미국의 힘은 곧 또다른 분출구를 찾게 될 것입니다. 그 1순위가 바로 북한이라는 것이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이는 국내경제에 직격탄으로 날아들어 하반기 우리경제를 옥죄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 이번 이라크전을 10여년 전의 걸프전과 비교하는 낙관주의도 경계해야 합니다.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죠. 일례로 걸프전 종결 당시 미국은 6%대이던 금리를 3%포인트 가량 떨어뜨려 미국은 물론 세계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금리는 1.25%입니다. 더 이상 금리를 하락시킬 수 없는 상황입니다. 또 미국의 무역수지나 재정적자는 걸프전 당시보다 훨씬 악화된 상태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번 전쟁이 이른 시일내에 끝난다 해도 세계경제의 회복을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사회=대중동 IT수출의 향방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의석=이번 전쟁의 첨단 무기들이 대거 동원된 전자·정보전의 양상을 띠게 됩니다. 이는 곧 전세계인들에게 IT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켜 관련산업의 성장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홍희=과거 중동 IT시장은 일본산 일색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품목에 따라서는 우리 제품의 브랜드 이미지가 일제를 앞서는 상황입니다. 이같은 상승세를 이어 전후 복구사업 등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설진영=지난 9·11테러 때도 셋톱박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선례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중동은 오일달러, 즉 돈이 있는 시장입니다. 수년간 서방국가의 경제제재로 피폐해 있는 이라크 역시 기본수요는 충분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입니다. 두바이 등지서 만난 현지 바이어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전쟁만 끝나면 바로 이라크에 들어가겠다는 게 현지 분위기입니다.

 ◇홍희=인구는 적은 데 비해 면적은 넓은 게 중동시장의 특성입니다. 이는 유선통신보다 이동통신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기본요소가 됩니다. 특히 이라크는 10여년간 묶여온 경제제재 조치로 인해 386급 컴퓨터조차 귀한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그다드 국제박람회장의 올해 부스 예약률은 100%에 달할 정도라고 하는 것은 이곳 시장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설진영=중동시장의 IT인프라는 거의 제로베이스로 보는 게 정확합니다. 따라서 PNA 등 국내에서는 한물 갔다고 생각했던 중고 통신시스템 등도 현지에서는 수요가 있습니다. 이같은 틈새시장을 우리 중소업체들이 관심을 갖고 발굴해야 합니다.

 ◇이지평=반면에 중동 부호들을 겨냥한 귀족마케팅도 중요합니다. 고급 PDP TV를 비롯해 시큐리티 관련 아이템 등도 전후 수요창출이 더욱 가속화될 만한 제품입니다.

 ◇사회=이제 우리의 대응자세를 다시 한번 재고해야 할 시점인 듯합니다.

 ◇정의석=최근 우리 증시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외국의 시각이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같은 영향으로 우리 증시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경쟁국인 대만 등지로 유입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할 만합니다. 따라서 종전의 영향으로 유가가 다소 하락한다 해서 섣부른 기대감을 갖기보다는 이를 기회로 전후 복구사업 등 신흥 잠재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설진영=업계 입장에서는 종전에 따른 세계 경기의 활성화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있고 돈이 있다면 그곳은 시장입니다. 이라크를 비롯해 중동지역이 바로 그런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다 공격적인 대응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지평=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지정학적인 위험요소가 큰 나라로 인식돼 있습니다. 이런 불안요소를 불식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장은 심리의 안정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전후 세계경제에 대해 대체로 낙관론이 우세하나 정부나 업계 모두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각종 위기대응책을 가동시켜야 합니다.

 <정리=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