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발발로 전세계 IT산업이 다시 한번 기로에 서게 됐다. 아직 개전 초기여서 전문가들조차 이번 전쟁이 IT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IT산업의 침체가 전쟁과는 상관없이 장기화돼온 것이라는 점을 들어 이라크전이 단기전으로 끝나더라도 경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개전으로 불확실성이 회복된 만큼 시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컴퓨터·반도체·통신 등 3개 분야로 나뉘어 이라크전이 IT산업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본다.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업계는 이번 전쟁이 불확실성을 해소, 수요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시스코시스템스·델컴퓨터·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 등 대형 하이테크업체는 최근 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실적 부진을 전쟁공포의 탓으로 돌리고 전후 경기반등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기업들이 전후에 Y2K 이후 계속 미뤄온 업그레이드에 대거 나설 것이기 때문에 대대적인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다.
시장조사업체들도 일단 이라크전이 단기전으로 끝난다는 것을 전제로 업계의 기대에 부응하는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가트너는 최근 이라크전이 두 달 이내로 끝나는 것을 전제로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전세계 PC 출하대수가 7.9% 늘어난 1억3870만대에 이르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11.3∼12.5% 증가하는 등 PC산업이 본격적으로 반등세를 탈 것으로 전망했다. 또 이 회사는 지난해 0.7%의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소프트웨어 지출액도 올해는 761억달러로 작년 대비 3.5% 성장, 회복세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라크전이 단기전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컴퓨터업계에 별다른 득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분석은 컴퓨터 분야의 침체가 최종 소비자의 수요가 줄어든 것 때문이라기 보다 닷컴 붕괴 이후 엔론으로 시작된 미국의 회계부정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기업의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미독립기업연맹(NFIB)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빌 던켈버그는 “IT업계가 경기불황을 전쟁 탓으로 돌리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며 “고객들이 이미 오래 전에 많은 장비를 구매해 더이상 필요가 없을 뿐 IT 수요와 전쟁은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UCLA 앤더슨예측연구소의 소장 에드워드 리머도 “경기침체 원인으로 이라크전을 탓하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의 견인차가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대부분이 의견일치를 보는 것은 이라크전이 예상외로 장기전으로 이어질 경우 컴퓨터업계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점과 IT산업이 닷컴 붕괴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이라크전이 단기화되는 것과는 별도로 수요를 촉진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듯 이번 전쟁으로 적지 않은 득을 볼 분야도 존재한다. 일례로 방송수신용 셋톱박스와 테러에 대비한 보안 관련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의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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