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는 미래 국가경쟁력이다]해외편-중국(하)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중국대륙을 종횡무진 누비는 한국의 문화콘텐츠산업 전사(戰士)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한·중수교 10년을 경과하면서 거의 모든 분야의 한국기업이 중국에 현지법인 또는 지사형태로 진출해 인구 13억의 거대시장을 노리고 있지만, 특히 문화콘텐츠부문은 최근 2∼3년 동안 가장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현지공략산업으로 꼽힌다.

 정보기술(IT)산업 중에서도 하드웨어(HW)인 이동통신, 정보기기, 가전부문의 중국 공략은 현지생산과 연결된 거대 설비를 동반하고 있는 것과 달리 소프트웨어(SW)인 문화콘텐츠는 설비보다는 사람의 진출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고, 현지활동이 활발한 문화콘텐츠업종은 단연 한국이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게임분야다. 당연히 중국 게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뛰어든 한국의 전문가들이 곳곳에 널리 퍼져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중 최갑식 시노퓨전 사장은 중국현지 게임업계에서 한·중합작이든, 한국상품의 중국시장 진출에서든 가장 돋보이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업가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 사장은 수년 전부터 중국 게임시장의 잠재력을 확신하고 현지 중견그룹인 양광가신(레이네트워크)과 손잡고 게임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엔 한국의 한빛소프트를 축으로, 양광가신과 차이나텔레콤 간의 3사 온라인게임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게임분야와 함께 요즘 최 사장이 몰두하고 있는 것은 한국내 경기침체로 인해 최악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벤처기업들의 성공적인 중국진출 문제다. 한국 벤처기업들이 무한잠재력을 지닌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고 이른바 ‘돈되는’ 사업모델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벌써 10년 가까이 쌓인 중국생활 경험과 현지산업적 인맥관계를 총동원해 한국 벤처기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중국벤처산업연구소(http://www.chinaventure.co.kr)’를 설립해 운영중에 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한국의 게임 벤처 중에서 중국의 산업토양과 시장요구에 맞는 우량기업을 선별해 중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연구소의 핵심역할이다.

 게임이 미래형 문화산업의 축이라면 음악은 한국을 중국에 알리고 한국 문화콘텐츠산업의 성공가능성을 중국인들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 효과적 통로다. 중국 10대를 사로잡고 있는 ‘한류열풍’과 그에 따라 파생된 한국산 게임돌풍, 한국 문화상품의 폭발적 인기에 있어 음악부문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음악의 중국시장 진출에 있어 김윤호 우전소프트(http://www.woojun,com) 사장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그간의 성과는 훌륭한 성공모델로 꼽힌다.

 7년여 전부터 시작한 현지 음반사업은 실제 돈벌이로는 신통치 않았다. 무분별한 불법복제와 그것을 당연시하는 시장의 풍토가 현지 음반사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 사장은 HOT, 신화, NRG 등으로 잇따라 히트상품을 만들어냈고, 그 바람에 지금은 한국 음반사업이 중국시장에 들어가는데 있어 꼭 손을 잡아야할 몇 안되는 사업가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김 사장이 중국에서 진행한 활동 중에서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는 것은 현재 중국인민방송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고 있는 ‘LG수기연청한국’이라는 프로그램의 결실이다. 방송DJ의 멘트만 중국어로 나갈 뿐 매일 1시간 동안 한국 노래와 음악만 소개된다. 중국 TV와 라디오 50년 역사를 통털어 프로그램에 외국 국가의 이름이 들어가고, 그 나라의 언어로만 된 문화가 통째로 편성되기는 이 프로그램이 처음이라고 한다.

 김 사장은 앞으로도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중국에 널리 소개되면서 제2, 제3의 LG수기연청한국과 같은 프로그램이 줄줄이 생겨나길 희망하고 있다.

 한중연합창업투자자문유한공사(KCVC, http://www.chinaventure.net) 대표직을 맡고 있는 박철홍 사장은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중국현지 특허전문가다. 현재 베이징대 법학박사연구생을 지내면서 학업을 통해 얻은 중국내의 실정법 이론과 관련법의 사례를 통해 한국기업이 중국시장에서 겪고 있는 특허문제를 직·간접적으로 풀어주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산 캐릭터인 엽기토끼(마시마로)가 중국내에서 무차별적으로 불법복제, 판매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를 도맡아 성공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중국 문화관련 정부기관과 협력해 불법복제와 밀수를 예방하는 대규모 행사와 시장조사 활동을 벌이기도 했으며, 실제 엽기토끼의 판권료를 소급 적용해 받아내기도 했다.

 최근 박 사장은 한국 벤처기업을 위한 현지 인큐베이팅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해박한 법적 지식과 현지 사업경험 등을 총동원해 한국벤처의 중국시장 진출을 돕고있는 것이다. 현재는 중국의 폭발적인 이동전화 보급률을 감안해 한국의 이동전화 관련 콘텐츠업체가 현지에서 진행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발굴중에 있으며, 이와 관련된 한 업체를 인큐베이팅하고 있다.

 이상용 베이징여명엔터테인먼트(http://www.dawn.net.cn) 사장은 애니메이션 및 캐릭터부문의 숨은 중국통 사업가다. 중국 CCTV가 올해말부터 방송에 들어가는 3D애니메이션 ‘네티비’의 후속 캐릭터사업을 도맡아 진행할 예정이다. 중국어린이 대부분이 하나씩 갖고 있다시피한 마시마로를 능가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이 사장은 문화콘텐츠산업에 눈뜨기 전 삼성의료기 중국현지 판매대리점을 운영하며 시장인맥과 사업관계를 키워왔다. 중국인 아내를 맞으면서 현지인에 대한 이해도가 더욱 높아졌으며, 문화산업의 성장성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최근엔 여명엔터테인먼트 이외에도 ‘드림보트컬쳐&콘텐츠’라는 관계사도 설립해 문화콘텐츠 관련 시장공략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만만디와 꽌시의 나라 중국. 느릿하고 태평스럽지만 한국인의 부지런함을 배우고 싶어하고 사람과의 관계만 풀리면 모든 것이 풀린다고 믿으면서도 한국인의 정확성과 높은 기술력을 부러워하는 중국인들에게 이들 한국 문화사업가들은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 미래를 함께할 친구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베이징=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인터뷰>박철홍 북경한중연합창업투자자문공사(KCVC) 대표 

 “문화콘텐츠부문의 지적재산권이나, 특허권문제는 실물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시장 접근이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한국기업들이 중국 문화콘텐츠시장에 진출할 때 중국의 현실법 체계가 어떠한지, 실제 판례는 어떻게 나있는지를 모르고 덤빌 때가 많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한국산 캐릭터로 중국에서 아직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엽기토끼(마시마로)’의 판권과 지적재산권 분쟁을 맡아 최근 잇따른 승소결정과 캐릭터 이용료를 받아내는데 성공한 박철홍 베이징한중연합창업투자자문공사(KCVC, http://www.chinaventure.net) 대표의 진단이다.

 베이징대 법학박사연구생이기도한 그는 “법적으로 콘텐츠가 보호받을 수 있어야 기업도 성장하고 산업도 클 수 있다는 인식이 이제 막 중국에 퍼져나가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기업이 애니메이션, 게임, 음반 등에서 성공하려면 이런 환경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대응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 KCVC는 한국의 야호커뮤니케이션을 인큐베이팅하고 있는 중이다. 벌써 2억1000만명을 넘어선 이동전화가입자 규모로 볼 때 벨소리나 모바일캐릭터 시장이 급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다본 것이다.

 “야호 같은 회사들이 아무리 한국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더라도 중국에서 성공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기는 모조품을 부르고, 아이디어의 공개는 무제한의 복제를 만들어내는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입니다. 사업출발부터 특허, 지적재산권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어놓지 않고 시작한다면 중간에 가서 낭패를 보기 일쑤입니다.”

 박 대표는 현재 칭후아통팡과 한국 협력업체 사이의 온라인게임 관련 법적권리 등에 관한 법률자문과 업무조율 등을 담당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취재를 마치며

 1주일간 주마간산격으로 살펴본 중국의 문화산업은 개혁·개방 수준을 넘어 벌써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모습이었다. 뭐든지 ‘돈’과 연결된다는 인식이 사업가든 시장관계자, 정부담당자 모두에게 확고히 들어차 있었다.

 물론 13억명의 인구가 말해주듯 중국시장은 1원짜리 상품만 전국민에게 팔아도 13억원이라는 거금을 만들 수 있는 더 없이 매력적인 시장이 분명하다.

 하지만 문화콘텐츠는 돈만으로 모든 성과를 따질 수 없는 그야말로 ‘문화’가 걸린 산업이다. 인터뷰에 응한 중국인 사업가와 정부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한국 문화콘텐츠사업가들이 너무 돈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고 혹평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돈생각을 하기에 앞서 기술과 성공경험을 먼저 확신시켜 달라는 충고였다.

 권기영 한국문화산업진흥원 베이징사무소장은 “누가 보더라도 세계 1등의 상품이라면 한국기업가가 중국시장에 애써 상품을 퍼뜨리려 하지 않아도 중국이 먼저 그 상품을 찾게될 것”이라며 “기술과 상품 자체의 경쟁력에 승부를 거는 자세가 한국의 문화 관련 사업가들한테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수한 경쟁력이 확인된다면 문화산업진흥원 베이징사무소는 언제든 한국 기업가들을 위해 활짝 열린 ‘중국창구’가 돼줄 것이라는 다짐도 덧붙였다.

 우리나라 문화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장대하고 깊은 역사를 지닌 중국시장을 대하는데 있어 한국 문화콘텐츠기업들이 조금이나마 속물적 근성을 버리고 진지한 접근방식을 고민해야할 때에 이른 것이다. 왜 폴크스바겐, 필립스, 소니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중국에서 마치 자국의 기업들처럼 존중받고, 인기를 누리는지 되짚어봐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