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1조원으로 인텔 유인

 산자부가 현행 외국인투자촉진법까지 개정하며 내밀고 있는 ‘현금무상지급(캐시그랜트)’ 카드에는 인텔 반도체공장의 국내유치를 성사시키고야 말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다.

 인텔이 아시아 지역 컴퓨터 생산업체에 반도체를 공급할 공장을 짓는 이 프로젝트는 초기 투자액만 20억달러, 최종 설비가 완공되면 80억∼100억달러 규모가 될 것이라는 게 관련업계의 전망이다. 인텔 투자유치 한건이 지난 한해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유치 총액인 91억달러를 훨씬 웃도는 셈이다.

 특히 참여정부가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건설을 이번 정권의 주요 핵심과제로 삼고 있어 산자부로서는 인텔 공장 유치건에 사력을 다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왜 개정하나=인텔의 요구가 가장 큰 이유다. 인텔측은 우리 정부와 반도체공장 설립건을 조율하며 국내 노동문제와 더불어 다른 경쟁국의 사례를 언급하며 캐시그랜트 부여를 강력히 주장해 왔다. 이같은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

 현행 외국인투자촉진법의 모순점에 대한 개선 차원도 개정의 이유 중 하나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은 크게 조세감면과 토지무상이용을 외국인투자 유인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조세감면의 경우 인텔 등 미국계 투자업체에 별다른 효용을 발휘하지 못해왔다. 미국의 세법은 해외에서 운영되는 자국 기업이 해당국에 실제로 낸 세금만을 공제해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계 투자기업의 본사는 한국정부로부터 받은 세금면제분을 미국세청에 공제 신청할 수 없게 돼 있다.

 ◇외국사례=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한 캐시그랜트는 이미 중국, 아일랜드, 영국, 싱가포르, 이스라엘 등 주요 투자유치국가에서 널리 시행중이다. 일정규모가 넘는 투자금액의 10∼20% 가량을 투자유치국에서 외국투자업체에 현금으로 무상 지급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때 현금지급 비율은 첨단기술 업종 여부, 고용효과 영향평가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 결정된다.

 지난해 4월 확정된 인텔의 아일랜드 웨이퍼 공장설립건 역시 인텔의 캐시그랜트 조건이 아일랜드 정부에 어느 정도 수용됐기 때문에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과제=재원마련이 시급하다. 영국 등 다른 나라와는 달리 현재 우리나라에는 캐시그랜트제를 위해 별도로 조성·적립된 기금이 없다. 따라서 당장 산자부 예산을 재원으로 마련해 조달하는 방법밖에 없는 실정이다. 빠듯한 부처 예산을 근거로 캐시그랜트 카드를 내밀 경우 오히려 협상의 입지가 좁아지는 역효과만 날 수 있다.

 또 인텔측 요구에 지나치게 저자세로 나가 국민의 혈세가 외국업체에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시민단체 등의 우려도 정부가 설득시켜야 할 과제다. 미국계 투자사만을 위한 배려라는 유럽 등 기타국의 불만도 우려되는 문제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