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모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최고 가수다. 최고라 함은 가창력도 그렇거니와 스타덤의 크기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그는 일부 세대가 아닌 가족 전체가 아는 이름이다. 최고 슈퍼스타답게 그의 앨범은 늘 높은 판매고를 기록해왔다. 지난 2001년에 낸 앨범도 1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하지만 그 이후 우리 음반시장은 더욱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어가 어떤 가수도 ‘밀리언셀러 신화’를 재현하지 못했다. 김건모도 이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앨범이 팔리지 않는 흉흉한 시절에 다른 가수도 아닌 그만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까닭이다.
얼마 전 발표한 8집 ‘Hestory’는 그런 그의 고민이 배인 작품이다. 그는 신보에 7집의 성공방식을 그대로 동원했다. 그래서 신곡 ‘청첩장’은 전작의 ‘미안해요’와 유사하고 ‘냄새’는 ‘바보’와 흡사하고 신중현의 ‘빗속의 여인’처럼 이번에도 윤수일의 ‘아파트’를 리메이크했다. 김건모 자신도 7집과 비교해서 큰 변화를 주지 않은 것을 인정한다. 노래 부르기에 있어서도 “힘을 줘 부르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시도와 실험을 택하기보다는 ‘이미 검증된’ 것을 한번 더 반복하는 방식을 취한 셈이다.
그는 사실 이전 소속사 시절 탈세문제가 터진 후 나왔던 6집이자 자기 색깔을 살리려 했던 99년의 야심작 ‘Growing’이 60만장의 저조한 실적을 나타낸 것에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서둘러 ‘김건모 시대의 퇴각’을 점친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7집으로 보란 듯이 그런 외부의 회의적 시선을 불식시키고 플래티넘 레코드 가수의 위상을 탈환하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다시 말해 이번 신보가 전작의 패턴을 반복한 것은 어쩌면 변화를 꾀한 6집의 실패가 가져다준 교훈(?)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을지라도 성공방식의 답습은 최고 가수로선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대목이다. 특히 평론가들이 싫어한다. 그러나 김건모는 “이번 앨범이 전작과 유사하다는 평단의 지적에 신경쓰지 않는다. 두 앨범에 나타난 나의 감정표현은 다르다”고 반박한다.
그는 목소리도 나이를 먹는다며 “신보로 나의 약점이라 할 굵지 않은 저음을 많이 극복했다”고 말했다. “김건모의 ‘성인가요적’ 발돋움이 돋보인다”고 호평하는 팬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장이 죽은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이라는 음반 제작자들의 자조가 퍼질 만큼 얼어붙은 시장에서 그의 앨범은 3주만에 50만장을 돌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보에 대한 평가는 결국 2가지 관점 중 어떤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음반시장의 회생이라는 그에게 주어진 임무에 중점을 두느냐’ 아니면 ‘매번 실험하면서 팬들을 새로운 지평으로 끌어갈 아티스트의 소명을 중히 여기느냐’다. 최고 가수로서 둘 모두를 충족시키지 못한 점은 아쉽다. 그러나 우리 시장의 현실을 도외시한 평가는 비정할 수 있다. 시장이 불량할 때 뮤지션은 위축되니까.
임진모(http://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