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신중해야 할 `DDA협상`

◆왕상한 <서강대학교 법학과 교수>

 

 세계무역기구(WTO)가 공식 출범한 것은 1995년의 일이었다. 8년 가까이 지루하게 계속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1947년 만들어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대신할 새로운 국제기구로 세계무역기구를 발족시켰다. 1994년 ‘마라케시선언’에 동참한 우리나라는 우루과이라운드 최종의정서, 세계무역기구 설립협정, 복수무역협정인 정부조달협정 등에 서명함으로써 세계무역기구의 일원이 됐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우리의 최대 현안은 농산물이었다. 이른바 ‘예외 없는 관세화’의 원칙에 따라 우리는 그 어느 품목보다 국민적 정서가 남달랐던 쌀마저 시장개방 협상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했다. 그때 우리나라 협상대표는 어떤 경우에도 쌀시장만큼은 지켜내겠다고 다짐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마저 쌀시장은 외국에 절대로 개방하지 않겠다고 단언했었다. 당시 어떤 형태로든 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호언장담하던 대통령이 그 입에 침이 채 마르기도 전에 쌀시장 개방의 불가피함을 호소하며 대국민 사과성명까지 발표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지난해 드러난 중국과의 마늘합의 사건만 해도 그렇다. 정부가 2002년 말로 종료되는 중국산 마늘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중국측에 합의해 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의 공복인 정부가 주인인 국민을 또 다시 속인 것이다. 사태가 커지면서 당시 한중 마늘협상에 참여했던 외교통상부와 농림부 등 소관 부처는 후속대책을 마련하기보다 협상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데 급급했다.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지금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무역기구에서는 도하개발아젠다(WTO DDA)로 불리는 새로운 협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2002년 1월 시작한 이 협상은 농산물과 서비스, 반덤핑, 보조금, 투자, 경쟁정책, 무역원활화, 정부조달 등의 분야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양자회담에 이어 올해는 조만간 본격적인 다자회담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지금까지 1년여 가까이 진행된 협상에서 우리나라 대표가 보여준 모습은 실로 걱정스럽기만 할 뿐이다. 지난날 대외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미숙함과 잘못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외부로 드러나고 있는 협상 관계자들의 모든 행태는 우리에게 신뢰를 주기는커녕 불안감만 증폭시키고 있다.

 양허안 제출시한을 코앞에 둔 지금까지도 정부는 우리의 양허안을 제대로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교육시장 개방의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고, 방송시장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와 방송위원회는 참으로 듣기 거북한 담당자들의 불협화음을 도처에서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있었던 도하개발아젠다 협상장에 우리나라는 회원국 중 최대 규모의 대표단을 파견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5명 내외의 소수정예 협상대표를 구성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무려 29명의 대표를 현장에 파견한 적도 있다. 이때 보건복지부의 경우 부내 공무원을 무려 4명이나 대표단에 포함시켰다. 이들 모두 대외협상 경험이 전무하고 WTO 규범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라는 충언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바로 자신들이 전문가라고 강변했다.

 외국과의 시장개방 협상은 몇몇 공무원이 책상 위에 있는 몇 권의 교과서로 지식을 얻고, 자기가 알고 있는 몇몇 지인들로부터 자문을 구해 대책을 강구할 그런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유명무실한 민간자문위원회가 아니라 실질적인 민간협력체를 구성해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들로부터 조력을 받아야 한다. 또한 협상장에서 오간 내용은 국민에게 가감없이 전달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이 ‘정부간 협상’이라는 이유로 일부 공무원만이 협상장에서 오간 정보를 독점하고, 문제가 불거지면 온갖 궤변으로 상황을 합리화하는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도하개발아젠다 협상에 임하는 대표는 하루 빨리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보다 외국과의 협상타결이 우선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고, 업무를 맡은 지 1년 남짓한 자신을 협상 전문가로 생각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외국과의 협상은 국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중차대한 사안임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