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 리처드 헌터 지음/ 윤정로·최장욱 옮김/ 21세기북스 발간
‘자유로운 유토피아의 입구인가, 끝없이 감시당하는 디스토피아인가.’
이 책은 유비쿼터스의 이중성을 ‘공유와 감시의 두 얼굴’이라는 잣대로 여과 없이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유비쿼터스(ubiquitous)’란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즉 우리의 모든 일상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휴대폰에 내장된 GPS 시스템이 인공위성과 연결돼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고, 인터넷에 연결된 전자레인지는 가장 맛있는 조리법을 검색해서 요리한다. 또 냉장고에 내장된 컴퓨터를 세팅하면 필요한 야채가 자동으로 주문되기도 한다. 이들 각각이 연결되어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 이것이 유비쿼터스다.
이 유비쿼터스에서는 모든 정보가 공유된다. 누구나 편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멋진 세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의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비밀없는 세계’가 될 가능성도 크다. 이외 크래킹에 의한 정보 유출, 바이러스 유포, 컴퓨터 범죄, 프라이버시 침해, 저작권 침해 등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부작용들이 우리 삶을 위협할 수도 있다.
저자 리처드 헌터는 이런 유비쿼터스 시대가 가져올 ‘부작용’ 측면에 무게중심을 두고 글을 풀어간다. 개인정보나 구매내역이 기업들 사이에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공유되는 현실, 통행인의 얼굴을 인식해서 범죄 혐의자와 대조하는 무인감시카메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폐해들이 제시돼 있다.
하지만 리처드 헌터는 이런 변화에 대해 확실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지는 않는다. 인간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선한 존재라는 믿음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해결책을 모색하고 실천에 옮기는 주체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임을 일깨워주려는 이유에서다.
다만 리처드 헌터는 ‘네트워크 군대’라는 개념을 통해서 해답을 귀띔해 주고 있다.
리처드 헌터에 따르면, 네트워크 군대는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서 연결된,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과 단체를 의미한다. 이들은 특정한 이슈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집되는 집단이다. 네트워크 군대에는 공식적인 조직이나 지휘체계가 없다. 명령을 내리는 상급자가 아니라, 영향력이 있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독점에 맞선 리눅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운동이나 MP3 음악파일 공유 소프트웨어가 그렇고, 99년 시애틀 WTO 회의와 2000년 제노바 G8 회담에 대한 반대시위에서도 네트워크 군대의 위력은 드러난 바 있다.
‘비밀없는 세계는 모두에게 복잡하고 위험한 곳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옥은 아니다. 그 곳에는 악마가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다. 더구나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한 존재라고 하지 않는가’라는 리처드 헌터의 머릿글은 상당한 시사점을 안겨 준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