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하늘 바라보네. 제발 꿈이기를. 폭탄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나요. 믿고 싶지 않지마는 그들은 우릴 죽이려나 봐요. 가족을 잃은 꼬마 아이의 가녀린 손은 장난감 대신 총을 쏘네.’
전쟁에 희생당해야 하는 이라크 어린이들의 심정, 그리고 이런 현실을 초래한 미국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묻어 있는 스토니 스컹크의 ‘NO WAR’ 한 구절이다. 반전 분위기가 퍼지면서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노래 가운데 하나다.
엔터테인먼트와 반전. 즐거움과 엄숙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요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반전의 분위기가 높다. 미국의 이라크 공습으로 시작된 야만적인 전쟁 앞에서 영화인, 게이머, 무용수, 음악가, 방송인 등 직업에 관계없이 반전과 평화를 외치고 있다. 진정한 즐거움은 평화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음악계 ‘No War’=스토니 스컹크의 ‘NO WAR’는 힙합 사이트 ‘힙합플레야(http://www.hiphopplay.com)’에서 하루 조회수가 3000건을 넘었으며 언더그라운드 포털사이트인 밀림(http://www.millim.com)에서도 다운로드 횟수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음악인들의 반전 평화를 위한 움직임도 그 어느때보다 강렬해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여의도에서 있었던 ‘반전서명운동’과 ‘이라크 파병 반대 1인 시위’로 시작된 음악가의 반전 움직임은 순수음악과 민족음악인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이달 1일에는 서양 클래식 음악가와 국악인, 민중가수 259명과 22개 음악단체가 참여, 미국의 이라크전 및 한국군 파병 반대를 위한 평화선언이 있었다. 특히 이번 평화선언은 규모나 자발적인 참여에 있어서 유례가 없는 일. 순수음악의 제도권 음악가들과 진보적인 민족음악인들이 연대해 실천적인 발언을 한 것은 해방 이후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달 4일에는 대학로 S.H클럽에서 ‘반전 라이브공연’이 열린다. 모 방송국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NO WAR’ 슬로건을 달고 나온 피터팬 콤플렉스를 비롯, 스토니스컹크, 국위선양에 앞장서고 있는 밴드 Y.Not, 여중생 사망 사건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트랜스픽션, Code82, The Cross가 모두 반전공연에 참가한다.
◇영화·게임업계 ‘평화를 원한다’=사회적인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인 참여를 해온 영화계도 발벗고 나섰다. 일부 영화인들은 전쟁반대, 파병반대를 외치며 삭발을 강행, 강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영화인회의 등 12개 영화계 단체들은 지난 1일 서울 명동성당 ‘반전 평화 캠프’에서 ‘전쟁중단과 파병반대, 침공지지철회를 위한 영화인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는 영화감독 김동원, 박찬욱, 박진표, 이현승, 이은, 임창재, 이성강 등을 비롯해 영화배우 방은진,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이 대거 참석했다.
영화인들은 이미 전쟁 발발 전인 지난달 19일에도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한다’는 성명을 통해 전쟁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으며 지난달 29일에는 광화문에서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는 반전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게임업계에서도 반전 운동이 한창이다. 어린이들이 많은 넥슨의 온라인게임 ‘비엔비’에서는 반전 아이템 ‘전쟁이 싫어요’ ‘No War’ ‘반전 시위 세트’ 등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을 정도. 무협 온라인게임 ‘천상비’에서는 미국 병사와 장갑차가 몬스터로 등장했으며, 온라인 미팅게임 ‘캔디바’에서도 반전 메시지 확산을 위해 게임 내 평화를 기원하는 아이템 ‘평화의 날개’를 만들어 사이버 시위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3D 온라인게임 ‘크로노스’의 한 유저는 김용택 시인의 ‘꽃피는 초원에 폭격하지 마세요’의 시구를 응용한 글을 게시판에 남기면서 광화문의 반전 촛불시위 참여를 촉구하기도 했다. 넥슨의 정상원 사장은 “그동안 게이머들은 사회참여의식이 결여된 사회적 주변인이란 편견이 있었으나, 이제는 게이머들도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자로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전여론에 눈 뜬 온에어=그동안 전쟁 속보경쟁에만 치중해온 방송계에서도 일부 채널에서 반전 여론에 따른 프로그램 편성을 시작했다. 프로그램의 주테마는 이라크 전쟁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 과연 전쟁이 불가피한 것인가에 대해 시청자들의 반응을 들어보는 것이 대부분.
반전 프로그램에 대해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방송은 시민단체와 시민이 직접 주축이 된 시민방송 RTV다. RTV는 지난달 21일부터 전쟁과 평화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과 견해를 취합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이라크전 특집 ‘반전, 평화, 시민의 힘’을 릴레이식 특집으로 방송하고 있다. RTV는 이라크전 발발 이후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이번 전쟁에 대한 우려와 비판,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 수준의 이벤트로 처리하는 국내 주요 언론의 보도행태, 그리고 국익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이라크 참전을 정당화·합리화하는 정부의 대처방식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반전휴머니즘에 근거한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다.
MBC도 지난 3일 오후 7시20분 시사성 가족 프로그램 ‘우리시대’를 통해 ‘전쟁 리포트-우리는 이라크로 돌아간다’를 방영, 전쟁 속보에만 익숙해 있는 시청자들에게 전쟁 이면의 피해상과 실제 현장속 진실을 심도있게 다뤘다는 평가를 들었다.
위성방송의 독립영화 전문채널인 제3영화채널도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반전 분위기에 부응, 전쟁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단편 독립영화들을 방송한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 ‘치열한 전투’ ‘데스크톱 워스’ 등 세편의 단편영화가 6일 밤 10시에 방영된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 유병수기자 bjorn@etnews.co.kr 류현정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