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예비판정은 한마디로 미국의 하이닉스 죽이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생존투쟁중인 세계 반도체업계가 공동의 희생양으로 하이닉스를 지목했고 자국 기업 살리기에 초점을 맞춘 미국정부가 힘의 논리를 앞세워 이를 승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U집행위를 등에 업은 인피니온까지 목을 죄고 있는 판에 미국이 선공을 담당한 셈이다.
◇본격화된 하이닉스 죽이기=마이크론이 상계관세 부과의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9분기 연속적자, 설비투자 실기, DDR 시장 공략실패 등으로 닥친 경영권에 대한 책임추궁을 하이닉스 문제를 들춰 무마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다른 하나는 퇴출 1순위로 손꼽히던 하이닉스가 회생할 기미를 보이자 하이닉스를 궁지로 몰아넣어 회생 가능성을 제거하겠다는 취지다. 9분기 연속적자 및 시장경쟁력 저하로 새로운 퇴출 대상으로 거론되는 마이크론 입장에선 시장안정과 거액의 설비투자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하이닉스를 사지로 몰아넣어 ‘하이닉스 퇴출-D램 공급량 저하에 따른 D램산업 호황-불황탈출 및 흑자달성’ 등의 과정을 유도한다면 마이크론으로서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미국과 EU의 양공작전=상계관세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EU집행위가 먼저다. 역시 배후에는 하이닉스와 시장점유율을 놓고 치열한 순위경쟁을 벌이고 있는 독일의 인피니온이 버티고 있다.
EU집행위의 예비판정은 이달말로 예정돼 있어 미 상무부의 예비판정은 어떤 방식으로든 EU판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예비판정은 30∼35% 수준의 상계관세 예비판정을 내리려는 EU집행위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사실 EU의 제소당사자인 인피니온도 과거 정부로부터 일정 금액의 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떳떳하지 못한 형편이지만 본판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인피니온도 수혜자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과 EU가 수개월 후로 예정된 최종판정에서 판결내용을 ‘하이닉스 무혐의’로 번복한다 하더라도 미국과 EU는 양공작전을 통한 실익을 챙길 수 있다.
◇예측불허의 향후 전망=물론 예비판정은 구체적 실사과정 없이 정부간 질의응답을 통해 도출된 1차 결과로 실사 이후 나올 최종판정에서는 얼마든지 결과가 뒤집어질 수 있다. 우리 정부나 국내 D램 제조업체 특히 하이닉스가 희망을 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오는 6월14일께 있을 상무부 최종판결에서 무혐의를 판정받더라도 예비판정의 대상자인 하이닉스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1일 마이크론이 하이닉스 중심의 한국산 D램에 대해 제소한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아니면 말고’식의 제소를 감행해도 제소당사자는 어떤 형식으로든 반사이익을 챙기게 된다.
더욱이 하이닉스 인수에 실패한 마이크론의 입장에선 인수실패, 설비투자 실기로 악화된 내부 여론의 화살을 하이닉스로 돌리겠다는 의도로 이번 통상전쟁을 유도한 터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됐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