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정보문화를 만들자](5)실버넷 운동-변노수씨의 하루

‘정보격차 해소의 전령사.’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 전령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은 변노수씨(서울시 마포구·63)는 현재 실버넷 운동본부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정보격차 해소 운동가(?)에 앞서 그는 너무나 평범한 우리들의 아버지 모습 그대로다.

 평생을 회사조직에 몸담아 왔고 얼마전 조그마한 공장을 운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업 일선에서 퇴직해 머리를 염색해야 하는 ‘실버’로 살고 있다. 그런 그의 염색된 머리칼 사이로 언뜻 비치는 흰 머리카락은 다른 어떤 사람과 달리 유난히 반짝이고 있다. 백발을 휘날리면서부터 배우기 시작한 인터넷 때문이다.

 컴퓨터나 인터넷을 전혀 몰랐던 그가 정보와 접하게 된 것은 캐나다에 있는 손자와 소식을 주고 받고 싶은 마음에 e메일 사용법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손자에 대한 그리움이 e메일을 배우면서 한올한올 풀리기 시작했다. e메일은 그에게 손자가 옆에서 귓속말을 하는 것과 같은 다정함으로 다가왔다. 이후 그의 인터넷 사랑은 깊어만 갔다. 컴퓨터를 이용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전자상거래를 비롯해 인터넷을 항해하고 갖가지 소프트웨어를 접했던 그는 이런 즐거움을 혼자만 느낄 수 없어 정보를 나누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현재 그는 실버넷 운동본부에서 기자로,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운영하는 방문 컴퓨터강사로 소외된 계층에게 정보의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변노수씨의 아침은 각종 신문에 실린 정보통신과 인터넷, 노인들에게 필요한 유용한 기사나 정보를 스크랩하는 일로 시작된다.

 매일 아침 수없이 쏟아지는 기사 가운데 실버세대에게 유용한 정보를 모아 실버넷 사이트(http://www.silvernet.ne.kr)에 올리는 것이 그의 오전 중 주요 업무다. 스크랩으로 오전 일과를 마친 변씨의 오후 일과는 현장 취재. 실버넷에 올릴 기사를 취재하러 집을 나선다.

 실버넷 문화교육부 기자인 그가 즐겨 찾는 곳은 종로의 파고다공원과 종묘 등 노인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기자라는 직업을 해보지 못했지만 사명과 열의 앞에서 그의 취재활동은 전혀 낯설지 않다.

 변씨의 취재 스타일은 여느 기자와는 좀 다르다. 특별히 누구를 인터뷰하거나 하진 않아도 그는 노인의 행동과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격차 해소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공원에 있는 많은 노인들의 애환을 직접 느껴봤던 그로서는 위화감을 조성하는 행동이나 취재는 하지 않는다. 좋은 것만 봐도 모자랄 인생에 비뚤어지고 꼬인 것만 들춰내는 것은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킨다는 계산에서다. 보다 밝은 세상을 위해 숨겨진 미담을 취재하는데 그는 취재활동의 전부를 쏟는다.

 “처음 기자가 되던 날 그리고 취재에 들어갔던 날 얼마나 흥분됐는지 모릅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소풍 전날의 느낌이라 할까요. 가슴이 떨리고 잠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취재 계획이 없는 날 그에겐 또 다른 임무가 있다. 바로 정보문화진흥원에서 방문 컴퓨터강사로 일하는 것. 한 주에 3번씩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그는 오후 시간을 할애해 정보문화로부터 소외된 이웃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나눠준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동안 배웠던 인터넷 사용법과 문서작성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잘 잊어버립니다. 교육을 하면서 저도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나눠 줄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변노수씨가 요즘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초계밀양 변씨를 소개하는 홈페이지 구축작업이다.

 그는 HTML을 이용해 능수능란하게 초계밀양 변씨의 가계도를 그리고 변씨의 유래와 변씨 세계표 등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자신의 뿌리를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작은 정보라도 주고 싶어서 시작했다는 그는 아직 단순한 화면이지만 포토숍이 익숙해지면 다채로운 홈페이지로 꾸미겠다는 야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 내고 또 자신의 지식을 전수할 수 있어 좋다는 변씨는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주최한 전국노인정보검색대회와 부산체신청의 인터넷정보검색대회에서 각각 은상을 받았습니다. 지금 취재때 들고 다니는 디지털카메라도 대회에서 부상으로 받은 것”이라며 연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무언가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접했던 그는 각종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디지털카메라와 LCD모니터, 스캐너 등을 모두 부상으로 받았다고 자랑했다. 이제 프린터만 부상으로 받으면 모든 게 구비된다고 웃어보이는 변씨의 어느 곳에서도 ‘실버’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배움에 대한 대가까지 받으니 더욱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그는 최근에는 일반인들은 관심도 없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비주얼베이직에도 도전하고 있다.

 “회사 퇴직 전까지 컴퓨터를 만져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컴퓨터는 더 이상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아직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 이용의 즐거움을 모르는 노인은 물론 장애인과 소외된 이웃까지 모두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앞장서겠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에 자청하고 나선 사람. 정보화의 큰 물결 앞에 당당한 실버세대. 정보화에서 소외돼 그 답답함을 경험했던 그가 이제는 정보의 격차를 줄이는 일선에서 땀을 흘리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기자와 보낸 하루를 뒤로하고 그는 방문 컴퓨터강사로 갈 시간이 됐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 실버넷 기자단은

 실버넷 기자단은 노년층에게 인터넷 교육을 하는 시민운동단체 실버넷 운동본부가 지난해 8월 만든 인터넷 웹진에 기사를 올리는 역할을 한다.

 실버넷 홈페이지(http://www.silvernet.ne.kr)에 정보화 격차 해소는 물론 실버세대를 위한 유용한 내용을 취재해 기사화한다.

 지난해 8월 14일 발족한 실버넷 기자단은 서울·부산·대구·인천 등 전국에서 13명이 활약중이다.

 실버넷의 교육 수료생 가운데 성적 우수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실버넷 기자들은 각종 검색대회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컴퓨터 도사들이 적잖이 포진해 있다.

 또 정보윤리감시단이나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의 장애인 방문 컴퓨터강사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기자들도 있다.

 교감 선생님 출신의 최연장자인 주종빈 기자(65)를 비롯한 92년 건설회사에서 은퇴한 뒤 고향인 경북 구미에 내려가 토종닭을 키우며 살고 있는 황진국 기자(64).

 소녀시절 무용수가 꿈이었던 인천의 장명자 기자(63), 현직 목사인 서울의 김영기 기자(59) 등 실버 기자단은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컴퓨터를 자유 자재로 이용하는 것은 물론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정보화 격차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

 실버 기자들은 문화·교육부와 이슈부, 사회·복지부 등 3개 분야에서 활동한다.

 물론 이들이 가장 관심을 둔 취재분야는 노인문제다.

 이들은 노인 복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불우한 독거노인의 사연과 그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애환을 다룬다.

 실버넷 신문의 기사는 기자단이 출범한 지 6개월만에 150건의 기사를 출고하며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사에 대한 의견이 올라오고 조회 수가 늘어날 때마다 가슴이 뿌듯하다는 실버 기자들은 세대를 뛰어넘는 당당함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 실버넷 최고령기자 주종빈씨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실버 기자를 하며 또 다른 인생을 살게 된 것에 감사한다는 실버 기자단의 최고령자 주종빈씨(65).

 30여년간 중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다 퇴임한 주종빈씨는 ‘인생은 60세부터’란 말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그는 요즘 학교의 낮은 울타리 안에 갇혀있던 30년여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생동감을 느끼고 있다.

 퇴직 후 대구 근처의 향교에 다니며 논어와 맹자를 배웠던 주씨는 무언가 배워보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재미를 못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우연히 실버넷을 알게 된 그는 명예 봉사직인 기자단에 원서를 냈고 당당히 합격했다.

 무보수에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 같았지만 컴퓨터 활용과 인터넷, 기사 쓰는 법 등 모두가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주종빈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등산을 한다는 그는 실버 기자를 하면서 산에 갈 때 제일 먼저 디지털카메라를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버려진 쓰레기로 오염된 산, 마구잡이 개발로 훼손된 자연 등 그는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실버넷에 사진기사로 올리는 것이 그의 주된 임무다.

 지난해 8월 실버 기자를 시작한 후로 ‘사진으로 보는 환경캠페인’이란 고정 코너를 만들 정도로 애정을 쏟고 있다.

 취재한 후 적절한 표현으로 기사를 쓰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그지만 정보화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의욕은 어느 누구보다 크다.

 “60∼70년대 한국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노후는 준비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방출됐습니다.”

 그는 실버넷을 통해 소외된 노인들이 많은 정보를 얻고 무언가 배우고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를 소망했다.

 “실버넷 운동본부에 소속된 기자로 우리 주변에 발생하는 노인에 대한 문제점의 원인과 그 대책을 편견없이 소개하겠습니다. 젊은 세대와 노인세대가 뜻을 모아서 함께 풀어야 할 문제점도 충실히 살피겠습니다.”

 선생님에서 실버 기자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주종빈씨는 이제부터 실버 세대도 경로라는 보호막에 안주하지 말고 축적된 경륜과 지혜를 젊은 세대에게 소개하고 전달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